칼럼

대한민국이라는 회사의 인사부서가 드리는 이야기

신경수의 사람人 이야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전하는 인간 신경수의 이야기.
CEO 신경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더십 전문가이다.
마케팅을 공부하고자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우연히 듣게 된 허츠버그의 '동기부여이론'에 매료되어 진로를 HR로 바꾸었다.
10년 동안 일본에 있으면서 조직과 사람에 대한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아인스파트너의 대표로서 한국의 많은 기업체에 조직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다.

제목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원은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등록인 신경수 등록일 2015.01.13

서울시의 산하단체 중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이라는 재단법인이 있다.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씨가 이끌고 있는 곳으로 명실공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다. 단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재단직원들 또한 그곳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률이 만만치 않은 곳으로 익히 유명한 곳이다. 음악계의 큰 산맥인 서울시향에서 최근 해괴하고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사무국 직원들이 사장을 고소하고 사장은 또 자기 직원들을 무고혐의로 역 고소하고, 사장과 직원간의 진실게임에 더해져 정명훈, 박원순 서울시장까지 흙탕물에 빠지게 된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13 2,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향의 국제적 경쟁력을 업그레이드 시킨다는 명분아래 미국 하버드대 출신의 박현정씨를 대표이사로 선임하게 된다. 대표로 부임하기 전의 박현정씨의 경력은 삼성생명 마케팅전무, 여성리더십연구원 대표였다. 단순히 지나온 경력만을 보고 판단한다면 박원순 시장이 찾고자 하는 인물상人物像에 가장 부합한 CEO라는 평이 돌았다. 하버드대 출신의 삼성그룹의 마케팅전무라는 타이틀은 국제적 경쟁력 제고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은 이미지였다. 또한 여성리더십연구원 대표라는 타이틀은 서울시향의 최고경영자라는 직무를 무난히 소화해 줄 것이라고 모두가 입을 모아 이번 인사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언론에서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내가 알고 있는 정명훈 감독과 서울시향의 정서가 그녀의 과거 커리어와 너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론에 보도된 정명훈 감독의 성향은 굉장히 보수적이며 情적이라는 평이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의 유럽생활로 성과주의나 개인주의 성향이 강할 것 같은 이미지와는 다르게 팀웍과 배려를 바탕으로 서로 다독여 주고 챙겨주는 동양적 사고가 굉장히 강한 분이라고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서울시향 이사장인 박원순 시장 또한 마찬가지다. ‘원순이 아저씨’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구수한 성격에 따뜻한 인간미로 무장된 분이시다.

 

반면, 박현정 사장이 자신의 커리어 대부분을 쌓아온 삼성은 성과에 기반한 ‘칼 같은 평가’와 일이 완성될 때까지 쉼 없이 쪼아대는 ‘밀어 붙이기식 조직문화’로 유명한 곳이다. 또한 하버드라는 대학은 또 어떤 곳인가?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그의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Dreams from My Father)》에서 “하버드는 내게 기회를 주었지만, 죽을 것 같은 경쟁의식도 만들어 주었다. 이곳에서 처절한 경쟁심리를 경험하지 못했더라면 나는 비열한 정치의 세계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하버드의 경쟁시스템은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인생의 대부분을 삼성과 하버드에서 보내면서 ‘살벌한 생존경쟁’과 ‘밥값을 중요시 여기는 조직문화’에 익숙한 박사장에게 서울시향 직원들의 동호회 같은 모습은 정말로 한심해 보였을 지도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부터 심상치 않은 조짐이 일더니만 결국에는 직원들이 사장을 고소하는 사태로 발전한 것이다. 사장은 “봐주기 식 온정주의가 조직을 망치고 있다” “무능한 직원들이 밥만 축내고 있다”면서 직원들을 비난하고 있는 반면에, 직원들은 “무조건 돈을 벌어오라며 거리로 내몰고 있다” “우리를 무뇌인간이라고 말하는 등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겼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입장이야 어찌되었든, 최근 불거진 갑질문제, 땅콩회항 등과 맞물려 여론의 흐름은 ‘박사장이 무조건 잘못했다’라는 분위기로 형성된 상태다. 하지만 박사장은 기자회견장에서 ‘한심한 서울시향’이라는 주제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서울시향 대졸초임은 3천만 원을 넘는다. 국민들은 단지 종업원이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그들 편만 드는데, 이 돈이 모두 여러분이 내는 세금에서 나간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동정심만 가지고 접근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나를 발탁한 이유는 조직의 경쟁력을 높이라는 의도라고 생각했다. 변화에 대해 전혀 반응이 없는 직원들에게 심한 말을 한 건 사실이지만 서울시향은 한심한 조직임에 틀림이 없다”

 

박현정 사장의 항변에도 일리는 있다. 박사장의 말처럼 형편없는 사람들을 개조해 보려다 사고가 난 것일 수도 있다. 형편없는 직원들이 그들의 ‘준 공무원 지위에 해당하는 혜택과 철밥통’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똘똘 뭉쳐서 집단적인 반란을 일으켰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박사장이 주장하는 것처럼 ‘비합리적 공기업문화에 대한 전쟁’과 같은 성전聖戰으로 몰아갈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CEO는 집안의 가장처럼 직원들을 보듬어 주고, 달래고, 안아주며 자신의 입장에서 보다는 직원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끌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면 방법을 달리 가져가야 할 일이다. 아무리 화가 나도 직원들과 대립 각을 세우고 싸울 일은 아니다. 아버지와 자식들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집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하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생각은 당사가 지난 5년간 조사한 직장인 의식조사에도 확연히 증명이 되었다. 다음은 직원들이 CEO에게 가장 많이 요구하는 리더십의 조사결과이다. 관리자는 비전제시47%, 솔선수범42%, 소통교감40%, 목표지향39%의 순서로 응답을 하였으며, 이에 반하여 일반직원들은 소통교감61%, 솔선수범46%, 목표지향35%, 비전제시20%의 순서로 체크를 해 주었다. 도표에서 보듯이 관리자와 일반직원들은 그들의 입장에 따라 선호하는 리더십에 차이를 두었는데 팀장급 이상 관리자가 비전을 가장 중요시 여기는 반면에 일반직원들은 소통과 이해를 가장 중요시 여겼다.

 

이런 의식구조의 변화는 박사장이 몸담았던 삼성에서도 보이기 시작한다. 올해 삼성 사장단 회의는 총 47회 열렸는데 그 중에서 리더십 관련 강의는 1월 변화와혁신, 3월 리더의 공감, 8월 교황의 리더십, 9월 세종대왕 리더십, 11월 하모니 리더십, 12월 위기관리 리더십의 순으로 총 6번 개최되었다. 12월 위기관리는 대한항공의 이른바 땅콩회항 때문에 개최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성과주의문화의 대명사인 삼성에서도 지금 우리시대가 바라는 리더는 어떤 리더인가? 에 대하여 조금씩 생각의 변화가 불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기 밥값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무능한 직원들로 둘러싸인 기업, 하는 일에 비하여 지나치게 높은 급여를 받고 있는 불합리한 급여시스템, 회사인지 학교인지 도무지 구분이 가지 않는 유치하고도 이상한 조직문화, 이런 말도 안 되는 조직문화는 마땅히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모든 개선의 시작은 나와 함께하고 있는 직원들에 대한 인격적 존중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원 개개인은 CEO에게 사랑과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