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한민국이라는 회사의 인사부서가 드리는 이야기

신경수의 사람人 이야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전하는 인간 신경수의 이야기.
CEO 신경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더십 전문가이다.
마케팅을 공부하고자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우연히 듣게 된 허츠버그의 '동기부여이론'에 매료되어 진로를 HR로 바꾸었다.
10년 동안 일본에 있으면서 조직과 사람에 대한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아인스파트너의 대표로서 한국의 많은 기업체에 조직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다.

제목 고스톱 쳐서 승진했습니까?
등록인 신경수 등록일 2015.04.28

왼쪽에 보이는 그림은 착시현상을 설명할 때에 자주 인용되고 있는 유명한 그림이다. 당신은 어느 쪽이 먼저 보이는가? 소녀인가? 할머니인가?

 

그림 속에는 노인과 소녀가 동시에 보인다. 노인을 위주로 그림을 보면 모피 코트 사이의 가로선이 살짝 열린 입이 되고 그 밑으로 턱이 보일 것이다. 입 부분 왼쪽 위에는 커다란 코가 있고, 검은 곱슬머리 바로 아래에 눈이 있다. 반면 소녀를 위주로 그림을 보면 고개를 돌리고 먼 곳을 바라보는 모습이 보일 것이다. 이 경우 노인의 입은 소녀의 목걸이가 되고, 노인의 코는 소녀의 턱이 되며, 노인의 왼쪽 눈은 소녀의 왼쪽 귀가 된다.

 

사람들을 절반으로 나누어 한 쪽은 소녀의 그림, 다른 쪽은 노인의 그림을 5분 동안 바라보게 한 다음 다시 전체 그림을 보여 주었을 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그림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처럼 한 이미지에 익숙해지면 다른 이미지에 대한 존재 사실을 알더라도 이를 인식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오랫동안 다른 환경에서 성장해온 성인들이 서로 다른 상대방의 시각을 인식하는 일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같은 그림인데 이렇게 다양한 대답이 나온다는 것은 보는 대상이 같아도 인식의 편차가 대단히 클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바로 작게는 조직내의 갈등을 유발하고 크게는 국가간의 전쟁을 부르는 요인이 된다. 조직내의 의사소통이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인식의 차이다. 그렇다면 인식의 차이가 생기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마다 관심사와 가치관 그리고 감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인식체계에 맞지 않는 정보들은 무시한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펼칠 때에 자신의 시각을 뒷받침하는 정보를 선택적으로 수집하고 기억한다. –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에서 인용

 

평소에 친분이 두터운 어느 중견기업의 회장님 요청으로 신규시장 진입에 대한 가부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전략회의에 외부 전문가의 입장으로 참가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마케팅 전문가도 아닌 내가 왜 이런 자리에 초대를 받았나? 하는 의구심을 가지며 내키지 않은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지만 발표가 시작되고 불과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왜 회장님이 나를 불렀는지 감이 오기 시작했다. 바로 부서간에 발생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갈등을 어떻게 치유했으면 좋은지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 동안 해외 유명브랜드를 수입하여 국내 시장에 유통시키며 승승장구 성장해 왔던 이 회사는 이제는 자사 브랜드를 가지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 생각으로 아이템 선정을 위한 준비작업을 해 왔었고 전략사업부 내에 별도의 기획팀을 신설하여 신규아이템에 대하여 치밀하게 시장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발표회를 갖게 된 것이다.

 

전체적으로 PT는 훌륭하게 진행이 되었다. 수요예측을 위한 잠재고객 분석도 좋았고, 예상되는 코스트와 1~3단계로 나뉜 판매전략도 5P전략에 의해 교과서처럼 잘 구성이 되어 있었다. 그들이 기획한 데로만 가 준다면 이 회사의 주력매출이 기존의 해외브랜드에서 국산 토종브랜드로 옮겨갈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였다. 회장님을 포함하여 모두가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에 갑자기 누군가가 급 제동을 걸고 나왔다. 바로 재무팀장이었다.

 

“예측한 원가계산이 엉터리로 작성이 되어 있습니다. 저건 거짓입니다. 저 계획대로 추진을 할 경우 신규 브랜드는 제대로 런칭도 못해보고 시장에서 철수를 해야 될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리스크 관리가 전혀 고려되지 않은 무모한 프로젝트입니다.”그리고 또 누군가가 “기자들 대상으로 한 접대비가 왠 말이냐!”고 발언하면서 순간 회의실 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적막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기업의 특성에 의해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조직에는 악어와 악어새처럼 서로간에 필요한 부서가 있고 반대로 상호견제가 유독 심하게 발생하는 부서들이 존재한다. 글로벌 전자기업의 R&D파트에 근무하는 친구가 있는데 항상 만나면 구매파트 사람들 때문에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싸구려만 사주는 바람에 연구가 제대로 안 된다는 푸념이다.

 

이처럼 서로간의 입장차이 때문에 반목이 심한 부서를 꼽으라면 아마도 ‘영업VS재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영업의 미션은 매출극대화에 있는 반면 재무의 미션은 비용절감에 있기 때문에 항상 마찰을 빚게 되는 것이다. 쓰지 않고 벌 수는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선에서 서로 간에 타협을 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이 기업의 경우도 비슷한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평소에 개념 없이 돈만 쓰는 전략사업부를 영 못마땅하게 여기던 재무팀장이 작심하고 제동을 걸고 나온 것이다. 마치 노인과 소녀의 그림에서 처음 눈에 들어 온 이미지가 판단의 준거치가 된 것처럼, 재무는 재무의 관점에서만 생각을 하고, 영업은 영업의 관점에서만 생각을 하고 지내온 것이다. 아무튼 회의장의 분위기는 재무팀장의 의견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분위기가 점점 형성되어 갔다.

 

개인별 갈등, 조직 내 갈등은 언제 어디서든 있을 수가 있다. 서로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일을 하다 보면 그런 일은 충분히 있을 수가 있다. 문제는 갈등에 대한 조정이다. 갈등의 징조가 보일 때는 서로 간에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해 보는 동료애를 발휘하면 좋겠지만, 이런 동료애의 발휘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당사자들의 상사가 중재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봉합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고 가기 전에 프로젝트 당사자들보다 한 직급 위에 있는 상사가 합리적으로 중재를 하여 갈등을 봉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솔루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회사의 경우 어떤 이유에서인지 경영진의 개입이 전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이 사건 이외에도 지금까지 크고 작은 마찰과 트러블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빈번한 갈등이 발생하는 데도 도중에 중재나 대화에 의한 조정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한 마디로 리더십의 부재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아무튼 서로 간에 상처만 남기고 회의는 애매하게 끝나고 말았다. 누군가가 공식적으로 나에게 요청을 했다면 개입을 했을 텐데, 참관인의 자격으로 참석을 한 방청객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그냥 두고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나의 소감을 묻는 회장님에게 나는 느낀 그대로 솔직하게 말씀을 드렸다. “쌍방간에 약간씩 책임을 물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책임은 양쪽 모두를 관장하고 있는 담당임원에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하고 답변을 드렸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두 사업부의 조정역할을 맡고 있던 담당임원은 해임이 되었다. 대개 이런 경우는 무조건 외부인의 의견이 반영되지는 않는 법이다. 아마도 평소에 쌓여있던 불신에 더하여 그 날의 매끄럽지 못한 일 처리로 해임이라는 최종 결심을 하게 된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준비했던 신규사업은 다시 한 번 자료를 보강하여 발표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새롭게 구성된 프로젝트 팀에는 재무파트 멤버도 합류가 되었던 터라 서로 간에 사전 조정작업을 거쳐 무사히 경영회의도 통과하였다.

 

개입해야 될 때 개입을 안 하고, 개입하지 말아야 할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는 관리자들을 가끔 접하곤 한다. 관리의 기본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그런 관리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로 자질이 있어 승진을 했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고스톱 쳐서 승진했을 리는 없을 테고, 그냥 나이 때문에 자동 승진되는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나이를 따지기 전에 기본으로 돌아가 Macro Management Micro Management 의 차이부터 곰곰이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