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한민국이라는 회사의 인사부서가 드리는 이야기

신경수의 사람人 이야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전하는 인간 신경수의 이야기.
CEO 신경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더십 전문가이다.
마케팅을 공부하고자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우연히 듣게 된 허츠버그의 '동기부여이론'에 매료되어 진로를 HR로 바꾸었다.
10년 동안 일본에 있으면서 조직과 사람에 대한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아인스파트너의 대표로서 한국의 많은 기업체에 조직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다.

제목 형아 아우야 네 살을 만져 보아라
등록인 신경수 등록일 2012.05.15

제목 – 형아 아우야 네 살을 만져 보아라

5월은 서로 보듬고 감사하며 축하할 일이 참 많은 날입니다. 근로자의 날을 시작으로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과 같은 대한민국 공식행사 이외에도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우리 마눌님 탄신기념일과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은 우리 어머니, 그리고 그분의 막내아들인 저의 생일 등과 같은 주요한 신씨네 공식행사도 전부 5월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단연 하이라이트는 어머니 생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날은 그 분께서 낳으신 5남매가 전부 모여 밤을 새워가며 옛날 이야기를 하는 집안기념일로 설레며 기다려지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번 어머니 생신은 구례군 산둥마을에서 갖기로 하였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중국 산둥성에서 산수유가 처음 건너와 자리를 잡은 곳이 이곳이라 이곳 지명이 산둥이 되었다는 산수유스토리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산수유 하면 “남자한테 참 좋은데~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라는 천호식품 김영식 회장님의 유명한 CF광고 덕분에 ‘남자에게 참 좋은 것(이용해 보지 않아 뭐가 좋은 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이라는 이미지가 이미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 있습니다만, 이번 기회에 구례 산둥마을이 우리나라 산수유의 본고장이라는 사실도 추가로 입력하게 되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형제들만 따로 주변 식당에 옮겨 막걸리를 한 잔 걸치는데 그곳 식당중앙에 멋있는 시조 하나가 우아하게 걸려있어 스마트폰으로 찍어 보았습니다.

형아 아우야 네 살을 만져 보아라
뉘손대 타나관대 양재조차 같으산다
한 젖 먹고 나이셔서 닷마음 먹지 마라

송강(松江) 정철 선생이 지은 시조로 내용은 이렇습니다

형아 아우야 네 살을 만져 보아라.

누구한테서 태어났기에 모양도 같지 않더냐?

어머니의 한 젖을 먹고 자라나서 어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겠느냐?

 

타이밍이 참 절묘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 생신을 맞이하여 모처럼 자리를 함께한 저희 형제들 더 우애 있게 지내라고 송강(松江) 선생님이 400년 만에 환생하셔서 저희 앞에 큰 글씨 하나 남겨놓고 가신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다들 기분이 좋으셨는지 평소보다 조금 더 오버하여 막걸리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산수유로 만든 막걸리라 그런지 맛도 좋고 분위기는 더 좋고~~~. 저희 형제들 취기가 오르면 항상 나오는 단골 레파토리가 있습니다.

 

작은형: “형님이 은행에 들어가서 처음 받은 월급으로 워크맨을 사줬지요. 본인은 봄여름가을겨울 양복 한 벌로 1년을 버티는 분이 동생 공부하라고 전 재산을 털어 사 주신 소니 워크맨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누나: “대학에 들어간다고 하니 큰 오빠가 등록금에 보태라고 봉투를 하나 주었는데, 나중에 보니 본인은 생활비 아끼느라 구두 한 켤레로 몇 년을 버티고 계시는 걸 보고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참고로 저는 이분들과 나이차가 10년도 넘을뿐더러(전문용어로 늦둥이라고 합니다^^*), 이분들께서 말씀하신 대화 내용의 시대적 배경 또한 70년대 후반입니다. 그 시절은 우리 가족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어렵게 살던 시절이었지요. 저희 집도 교직에 계신 아버님 한 분의 월급으로 저희 5형제, 삼촌 고모가 함께 더불어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딸 들은 입 하나를 줄이기 위해 빨리 시집을 가야 했고, 아들은 빨리 사회에 진출하여 돈을 벌어야 하는 암묵적 사회관습이 우리 집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형님, 누님들 사이에서 이런 대화가 오고 가면, 사실 저는 그렇게 크게 공감대 형성이 되지는 않습니다. 8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저로서는 70년대의 보릿고개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것도 있지만, 그 만큼, 우리나라 근현대사가 정희 이전시대와 박정희 이후시대로 나뉠 정도로 80년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것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장남으로 산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집안의 장남은 가족을 위한 사명감, 책임감…… 뭐 이런 평생 자신을 짓누르는 큰 돌덩이를 안고 인생을 살아가는 필연적 운명을 타고 난 것 같습니다.

 

다른 집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저희 집도 장남이신 큰 형님에게 참 많은 빚을 지고 살아왔습니다. 빨리 취직해서 동생들 공부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정작 본인이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은 거의 대부분 포기하면서 살아왔으니까요. 사람은 원래 남이 알고 있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10배는 많다고 하니, 모르긴 몰라도 우리 큰 형의 자기희생은 저의 상상을 초월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분이 몇 해전, 30년의 은행생활을 마치고 인생의 2막을 시작하셨습니다. 지금부터의 인생은 장남으로서의 삶 보다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인생을 가져주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I’ll do it someday.”

Monday, Tuesday, Wednesday, Friday, Saturday, Sunday.

See? There is no Someday.

It’s time to ride.

“언젠가 꼭 하고 말 거야.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보이나요? ‘언젠가(someday)’란 없습니다.

지금이 즐길 때입니다.                                   –할리 데이비슨 광고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