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한민국이라는 회사의 인사부서가 드리는 이야기

신경수의 사람人 이야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전하는 인간 신경수의 이야기.
CEO 신경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더십 전문가이다.
마케팅을 공부하고자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우연히 듣게 된 허츠버그의 '동기부여이론'에 매료되어 진로를 HR로 바꾸었다.
10년 동안 일본에 있으면서 조직과 사람에 대한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아인스파트너의 대표로서 한국의 많은 기업체에 조직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다.

제목 5월에 더욱 빛나는 사람들 (엄마라는 이름으로)
등록인 신경수 등록일 2013.05.28

Part 2-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엄마

예전에 강호동씨가 진행하는 〈무릎팍도사〉라는 프로그램에서 아트스피치의 김미경 원장이 나온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저분이 저렇게 유명한 분이셨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TV를 보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몰랐던 그 분의 고군분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많은 좋은 이야기 중에서 유독 저의 귀를 잡아 당겼던 대목은,

 

강호동: 지금의 김미경은 누구 덕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미경: 당연히 저희 엄마이십니다. 저의 성공은 저희 엄마 새벽기도 덕분 이예요(^^*). 새벽 430이 되면 하루도 빠짐없이 교회에 나가서 새벽기도를 드리십니다. 하루는 따라가 봤어요. 뭐라 기도하시나 보려고요.

강호동: 뭐라 하시던가요?

김미경: 우리 미경이 잘되게 해 주세요. 이번에 대학시험 보러 서울 올라가요. 꼭 꼴찌로 붙여 주세요~.

강호동: 아니, 왜 꼴찌입니까? 기왕 붙여달라 하는 거 1등으로 붙여달라 하시지 않고?

김미경: 나중에 물어봤어요. “엄마~ 그때 왜 꼴찌로 붙여 달라했어?”하고, 엄마가 웃으면서 말씀해 주시더라고요,“1등으로 붙으면 교만해 지니까, 꼴찌로 붙어야지 감사하며 열심히 학교 다닐 것 같아서~”

 

정말로 저분의 성공은 엄마가 만들어 준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저희 어머니의 기도하는 모습이 오버랩이 되었습니다.

 

저는 32녀의 막내입니다. 형님들, 누님들과의 나이차가 10년이 넘게 나는 바람에 항상 외톨이로 자랐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늦둥이라고 하지요. 늦둥이 막내 아들은 아들, 딸들을 위해 새벽 5면 어김없이 일어나셔서 성모님에게 기도를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랐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부터는 집을 떠났으니 거의 20년간을 보고 자란 샘이 되네요.

 

성모님~ 저희 큰 애가 이번에 아이를 낳습니다~ 부디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게 해 주세요. 성모님~ 이번에 저희 작은 애가 방송국에 시험을 치릅니다~ 미끄러지는 일이 없도록 도와 주세요. 성모님~ 이번에 넷째가 임용고시를 치릅니다~ 고생한 만큼 실망이 없도록 도와주세요.”유독 생각나는 저희 어머니 기도테마입니다.

 

저희 어머니 새벽기도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기도드릴 주제가 잡히면 성모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실 때까지 그거 하나만 기도를 드립니다. 비가 오기 전 까지는 산에서 내려오지 않는 인디언 제사장의 기우제처럼 저희 어머니의 기도도 1년이고 2년이고 성모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시기 전에는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특징은 기도대상이 저희 5남매에 항상 국한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이루어져 왔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수십 년간을 오로지 5명 만을 위하여 기도를 하는데, “그 누군들 그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평온하게 지내던 집안에 큰 일이 하나 생겼습니다. 3때입니다. 학력고사를 한달 정도 앞두고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있는데, 저녁 9시쯤 교무실에서 호출이 왔습니다. “어머니가 위독하시단다~ 빨리 책가방 챙겨서 전남대 병원 응급실로 가라!”라는 담임의 말에 택시비만 손에 쥐고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병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느꼈던 공포는 지금 생각해도 생생합니다.

 

비오는 날 옥상에서 미끄러지면서 척추가 부러지셨는데, 그 부러진 허리를 쇠파이프로 지지케 하는 대수술이었습니다. 24시간에 걸친 수술이 끝난 후,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말에 다리가 풀리면서 그만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습니다. 19살 고등학생이 듣기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메시지였던 거지요. 그러나 다행히 성모님은 우리 어머니를 기적처럼 살려주셨고 눈물로 범벅이 되었던 그 때의 일이 있은 지도 벌써 30여 년이 다되어 갑니다.

 

병원에 있었을 때에도 우리 어머니 새벽기도는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당신의 의식이 돌아 온 순간부터 바로 시작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서울에 있는 우리 아이들 잘 지켜봐 달라고 새벽 5가 되면 어김없이 일어나 병상에서 묵주를 돌리십니다. “엄마는 고 3인 막내 걱정은 안 하시고 맨날 형들 걱정만 해요!”하고 신경질을 부릴 정도로 자나깨나 서울에 올라가 있는 형들 기도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늦둥이로 태어나 좋은 점이 있습니다.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것입니다. 정말 말로는 다할 수 없는…… 반대로 늦둥이로 태어나 안 좋은 점도 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이 다른 형제들에 비교하여 턱없이 적다는 점입니다. 우리 어머니, 벌써 80을 훌쩍 넘기셨으니 앞으로 함께 할 날들이 얼마나 더 남아있을지, 막내는 생각만 해도 눈가에 눈물이 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