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한민국이라는 회사의 인사부서가 드리는 이야기

신경수의 사람人 이야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전하는 인간 신경수의 이야기.
CEO 신경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더십 전문가이다.
마케팅을 공부하고자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우연히 듣게 된 허츠버그의 '동기부여이론'에 매료되어 진로를 HR로 바꾸었다.
10년 동안 일본에 있으면서 조직과 사람에 대한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아인스파트너의 대표로서 한국의 많은 기업체에 조직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다.

제목 낮술을 마시는 조금은 궁색한 변명
등록인 신경수 등록일 2013.11.20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해외영업을 책임지고 계시는 선배가 갑자기 점심을 같이 할 수 있느냐?”는 전화를 주셨다. 다른 약속이 없던 터라 같이 점심을 하게 되었는데, 식사를 하다 말고 선배가 갑자기 소주를 주문하는 바람에 꾼에 경지에 계신 분들만이 마신다는 이른바 낮술을 하게 되었다. 사실은 여러 가지 속상한 일이 생긴 차에 누구하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대낮에 술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매출에 대한 심한 스트레스에 마음 고생이 심한 그 분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과 보글보글 끊는 찌개가 어찌나 궁합이 잘 맞던지 순식간에 각 1병씩을 비우는 엄청난 상황까지 가 버린 것이다. 얼굴은 벌개지고~ 알코올 냄새도 나고~, 이대로는 사무실에 들어갈 수는 없다는 생각에 주변의 선릉공원을 두세 바퀴 돈 후에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사무실로 향하게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평소 사무실의 군기반장으로 통하는 슬기 과장이,

사장님! 술 드셨어요? 대낮부터 무슨 술 이예요!”

아니, 그게…… 오신 분이 하도 권하기에 반주 삼아 딱 한 잔만 한 거야~^^;”

딱 한잔도 술은 술이잖아요! 대낮부터 술 드시고 그러는 거, 직원들 보기에 민망하고 좋아 보이지 않으니 주의하시기 바래요!”라고 말하며 그렇잖아도 조마조마해 하던 마음에 기름을 붇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말기 바란다. 우리 슬기로 말할 것 같으면 지혜와 미모를 겸비한 엘리트 사원으로서, 영업의 최전선에서 최고의 실적을 내고 있는 우리 회사의 진주와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워낙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 표리일체의 솔직한 성격인지라 직설적인 화법을 쓴 것뿐이지 내가 미워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니까(^^*).

 

최과장으로부터 경고(?) 섞인 핀잔을 들으니 잊혀졌던 아주 오래 전 에피소드 하나가 문득 생각이 났다. 오랜 일본생활을 마치고 서울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부서를 책임지고 있는 본부장님과 거래처 임원을 모시고 점심을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함께 한 식당에서 먼저 말을 꺼낸 건 우리 쪽 본부장이었다.

김이사님, 이야기 들었습니다. 이번에 사업부가 분사하기게 되었다고요?”

~ 걱정이 많습니다. 딸린 식솔이 100명이나 되는데, 본부장님이 많이 도와주세요

아무튼 여러 가지로 어깨가 무거우실 텐데 술 한잔 하실까요? 여기 갈매기 살 고기가 맛있는데, 김치찌개에 갈매기 살 어떠세요?”

, 좋습니다

정의감에 불타는 젊은 청년이 보기에는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아니면 나를 일본 본사에서 보낸 스파이로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모시고 간 본부장님이 신군 먼저 들어가게나~” 하시며 나를 먼저 보내는 것이었다.

 

아직도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한 이유는 당시에는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가 안 되는 컬쳐쇼크가 2가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낮술갈매기살이다. 나는 갈매기살 고기가 날아 다니는 갈매기의 어느 부위인 줄 알았다. 서울에서는 갈매기도 잘 손질을 해서 저렇게 익혀 먹는구나@_@”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 갈매기가 그 갈매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데 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그 당시에는 날아다니는 갈매기를 잡아 먹는다는 사실이 참 신기했다.

 

갈매기 고기와 달리 낮술에 대한 이해를 갖기까지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4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가끔 외부에서 오신 분들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낮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왜 낮술을 하는지, 그리고 왜 저녁에 식사를 하면서 반주를 찾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도 벌서 그런 나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 당시의 우리 본부장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면, 그 당시 낮술 하고 들어오는 본부장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신경수처럼, 낮술하고 들어오는 나를 욕하는 직원이 있다 해도 유구무언이라 할 것이다.

 

그 누구도 세상 살아가는 법을 처음부터 아는 사람은 없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하나씩 알게 되어 가는 것 같다. 사춘기를 겪으면서 이성을 알게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늘어나는 흰머리를 보면서 염색이 잘 되지 않았다고 스트레스 받아 하는 선배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요즘은 꽃중년, 꽃할배 하면서 은막에서 떠 났던 노장들을 다시 무대에 세우는 무드가 강하게 일고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건강한 시민국가 로마를 지켜내기 위해 원로원의 나이를 제한한 고대 로마인의 지혜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직도 마찬가지이다. 팀원이 팀장이 되고, 팀장이 본부장으로 지위가 바뀌면서 그 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에 대해 알게 된다. “이렇게 힘든 자리였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전임자에 대한 이해와 존경심을 갖게 된다면, 시간이 흐른 후에 그도 마찬가지로 후배들로부터 존경과 기대를 받을 것이고, “별 차이 없네!”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문제지만 그보다도 그가 속한 조직에 대해 꼼꼼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조직으로부터의 기대역할이 변한다는 것이다. 팀원은 나에게 주어진 내 몫만 잘 처리하면 충분히 칭찬을 받지만, 팀장이 되면 우리 팀 멤버들이 내는 아웃풋의 결과에 의해 평가를 받는다. 본부장도 마찬가지이다. 내 개인적인 실력보다는 우리 부서원들의 노력에 의해 결과가 나와야 하기 때문에 내 개인실적보다는 부서관리능력으로 평가를 받는다. 나 외의 주변인에 신경 쓰는 것도 싫고, 오직 내 일에만 신경 쓰고 싶은 욕구가 강한 사람은 매니저로서의 견장을 붙이는 것 보다 스페셜리스트(匠人)로서의 길을 만들어서 전문가의 길을 걷게 끔 커리어 로드맵을 만들어 주는 게 좋다.

 

막상 그 자리에 오르기 전에는 팀장이나 본부장에게 요구되는 역할이 무엇인지 알 리가 없다. 그래서 자기 할 일이나 잘 할 것이지, 왜 우리들 일에 저리 간섭을 하나?”하고 관리자들의 행동을 오해하고 곡해한다. 심지어 일은 우리만 하고 간부들은 탱자탱자 놀기만 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직급이 올라갈수록 그 중압감도 함께 비례해 간다는 사실은 내가 막상 그 자리에 올라보고 나서야 이해가 된다.

 

나이를 먹으면 저녁 술이고 낮술이고 특별한 경계가 없다. 그저 그 상황에서 내 앞에 닥친 근심걱정을 같이 나눌 수 있는 그 누군가가 있으면 기분이 동하여 술을 찾는 것일 뿐이다. 아마도 속절없이 가버리는 내 인생의 무상함과 내가 책임지고 있는 가족과 직원들에 대한 무거운 중압감이 24시간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당부하노니, 후배들이여~ 그대들의 상사에 대하여 조금은 측은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조직에서의 스트레스는 직급에 비례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