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한민국이라는 회사의 인사부서가 드리는 이야기

신경수의 사람人 이야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전하는 인간 신경수의 이야기.
CEO 신경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더십 전문가이다.
마케팅을 공부하고자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우연히 듣게 된 허츠버그의 '동기부여이론'에 매료되어 진로를 HR로 바꾸었다.
10년 동안 일본에 있으면서 조직과 사람에 대한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아인스파트너의 대표로서 한국의 많은 기업체에 조직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다.

제목 너무 멀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사이가 좋다
등록인 신경수 등록일 2014.01.08

1974년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서 마크 그라노베터라는 이름을 가진 박사가 재미있는 연구결과를 하나 발표하였다. 〈일자리를 구하는 경로에 대한 연구〉라는 이름의 이 보고서에 따르면 사람들은 취업을 할 때, 평소 알던 사람에게서 정보를 얻거나(56%), 직접 발로 뛰어 취업을 하거나(20%), 구인광고나 잡헌터를 이용(18.8%)하는 패턴을 보인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경로라고 밝힌 평소에 알고 지내는 사이(56%)’인데, 일반적으로 높게 예상한 밀접한 관계 31%에 불과하고, 나머지 69%의 사람들은 느슨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이 논문은 약한 연결관계의 강점(The strength of weak tie)’라는 이론으로 발전하게 되고 약한관계가 강한관계보다 정보, 자원의 흐름에 훨씬 효과적이다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증거로 많이 인용되고 있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지나치게 가까운 사이보다는 조금은 거리가 있는 사이가 오히려 더 편하고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평소에 조직의 외부에서 가볍게 사적으로 알고 지내던 사이가 같이 한 솥 밥을 먹는 사이로 바뀌게 되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까? 결과적인 면에서 성공과 실패를 확률적으로 계산한다면 어느 정도나 될까? 솔직히 말하면 개인적으로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긴 하지만, 이런 궁금증을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터에 좋은 사례하나를 경험하게 되었다.

 

지난 달 말, 평소에 가볍게 활동하고 있던 어느 작은 커뮤니티의 연말 송년회가 있었다. 나를 가운데 두고서 후배 둘이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게 냉랭한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송년회가 끝나고 나서 평소 친하게 지내던 김실장이 다가와 상담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편의상 주인공의 이름을 김실장과 박과장으로 부르도록 하겠다)

 

신선배님 박과장 때문에 힘들어 죽겠어요!”

? 무슨 일인데?”

뻔한 거짓말로 대충 넘어가려 만 하고, 업무에 집중을 못하고 수다만 떨라고 하고...... 제가 사람을 완전 잘못 봤어요. 같이 일하자고 하는 게 아니었는데 정말 후회되네요!”

 

박과장이 김실장의 회사에 들어간 건 6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아교육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기업에서 마케팅부서를 책임지고 있는 김실장은 시장에 대한 타고난 감각 때문에 경영진으로부터도 높은 신뢰를 받고 있는 훌륭한 친구이고, 박과장은 청소년 대상의 영어교육 전문기업에서 학원영업을 주로 담당하고 있는 친구이다.

 

김실장의 부서에 결원이 생기면서 박과장을 스카우트하게 되었는데, 박과장도 마침 이직을 생각하고 있던 터라 박과장의 전직은 속전속결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환상의 콤비가 될 거라며 밤새도록 술로 전의를 다지던 때가 엊그제인데 벌써 반년의 시간이 지났고, 서로 간에 커다란 마음의 벽을 안고서 오늘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연애와 결혼이 다른 것처럼, 둘의 결합을 그리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은 조심스런 어조로 김실장과 박과장 모두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한 기억이 난다.

 

인간은 누구나 다중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단다. 밖에서 본 모습을 안에서도 똑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나의 모습 = 성격 X 환경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보여지고 있는 모습이 다른 환경에서도 그대로 발산된다고 생각하는 건 큰 오산이니 둘 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하기 바란다.”

 

한번 마음이 떠나면 상대방의 모든 것이 다 삐딱하게 보이는 법이다. 쾌활해서 마음에 든다던 박과장의 성격은 수다쟁이로 표현되었고, 심각하지 않아서 좋아 보였던 여유로움은 뭐든지 대충 넘기려고만 하는 거짓말쟁이라는......  180° 다른 언어로 바뀌어 돌아왔다.

 

하지만 뭐든지 한 쪽의 의견만 들어서는 안 된다. 부정적인 의견은 특히 그렇다. 사람은 뭐든지 본인에게 유리한 입장에서 생각하고 사물을 해석하는 본능이 있는지라 반드시 반대편에 있는 사람의 의견도 들어보아야 한다. 학문적인 업적에서는 존경을 받으시는 분들조차도 소속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리에서는 객관성을 상실해 버리는 상황을 여러 번 접하면서 사람이라는 게 다 자기 유리한 쪽으로만 생각하는 동물이구나!”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해 본 경험이 있다.

 

다음 날 점심때 김실장 모르게 박과장을 만나 보았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일할 의욕이 전혀 생기지 않아요. 의욕적으로 무슨 일을 추진해 보려고 기안을 올리면 올리는 안건마다 이건 이것 때문에 안되고, 저건 저것 때문에 안되고온통 안 된다는 피드백뿐이에요. 거기다가 믿었던 김실장님은 이사님 앞에만 가면 말 한마디 못하시는 벙어리가 되어 버리고, 맨날 맞춤법 틀렸다고 지적이나 하시고, 주말에 전화해서 업무 체크하는 건 정말 돌아버리겠어요∏∏

 

공손함과 꼼꼼한 성격 때문에 김실장을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그를 칭찬한다. 박과장 또한 반년 전까지만 해도 실장님은 저의 롤모델이세요. 영원히 존경하며 살겠습니다.”라고 말했는데......마음이 떠난 그 자리에 아랫사람을 괴롭히고, 위만 쳐다보는 해바라기 상사의 모습만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행동경제학을 창안한 세계적인 심리학자 대니얼카너먼(Daniel Kahnemen)교수는 직관적 사고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지적 오류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방해한다는 내용의 논문으로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였다. 수상과 관련된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직관은 경험이 제공하는 것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며, 우리가 내리는 수많은 선택과 판단을 은밀히 조종한다. 그러나 솔직히 나는 직관의 힘을 그리 믿지 않는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상대방의 내면의 모습(眞心)을 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나도 나 자신을 모를 때가 많은데 하물며 사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에 가깝지 않을까? 그러나 우리는 결국 눈에 보이는 모습에 의존하여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지나치게 가까운 사이가 되어 실망스런 결과를 보는 것 보다는 때론약한 연결관계의 강점(The strength of weak tie)’이 주는 달콤한 사과를 계속 간직하는 편이 더 낳을 때가 많은 것 같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P.S: 글이 완성된 후, 김실장과 박과장에게는 사전에 양해를 구했다. 또한 박과장은 지난 주에 다른 조직으로 이직을 했다. 그리고 둘은 서로 예전의 모습을 서서히 찾아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 역시 인간관계란 너무 멀어져 가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가까워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는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