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한민국이라는 회사의 인사부서가 드리는 이야기

신경수의 사람人 이야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전하는 인간 신경수의 이야기.
CEO 신경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더십 전문가이다.
마케팅을 공부하고자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우연히 듣게 된 허츠버그의 '동기부여이론'에 매료되어 진로를 HR로 바꾸었다.
10년 동안 일본에 있으면서 조직과 사람에 대한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아인스파트너의 대표로서 한국의 많은 기업체에 조직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다.

제목 현명한 판단은 어디에서 오는가 - Part 2 사람
등록인 신경수 등록일 2013.12.23

최근에 오랜만에 참 재미있는 스포츠 영화를 하나 보았다. 2002년 미국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라는 야구구단의 기적 같은 20연승을 실화로 한 영화로 〈머니볼〉이라는 제목을 가진 영화이다. 표면적인 줄거리는 ‘빅데이타를 활용한 최적의 팀구성’이라고 쓰여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라는 제목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숨어있는 재능을 발굴하고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주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정경기에는 일절 따라가지 않는다는 단장의 말에 “왜 선수들과 어울리지 않는 거죠?”라고 부단장 피터가 묻는다. 갑작스런 피터의 질문에 주인공 빌리빈을 열연한 브래드피트는 선수 각자의 장단점이 적힌 리포트를 읽으며 이렇게 말한다.

“실력 있는 선수는 데려오고 실력 없는 선수는 내보내는 게 나의 일이다. 선수들과 어울리면 情이 들게 마련이고 情이 들면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없다.

 

어느 조직이고 마찬가지가 아닐까? 사적인 감정이 들어가는 순간 공정한 판단은 흔들리고 만다. 학교 선후배로 엮이고, 술자리에서 어울리고, 그 때부터 개인적인 부탁을 거절하기 힘든 상황이 되어 버린다.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아는 사이에 부탁을 거절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기회의 제공’이라는 이유로 부탁을 들어주면 ‘자기식구 챙겨주기’라는 비난을 듣고, ‘투명경영’이라는 이름으로 부탁을 거절하면 ‘싸가지 없는 XX’로 낙인이 찍혀 소속된 단체나 동문사회에서 ‘어디 얼마나 잘 나가는지 보자!’라는 저주를 듣게 된다.

 

영조대왕도 이루지 못했던 탕평책을 성공시킨 인물이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든 네델란드 출신의 거스히딩크 감독이다. ‘히딩크의 매직’이라는 이름으로 수십권의 책이 출간이 되었지만 모으고 모으면 결국 한가지로 요약되는 것 같다. 선수를 선발함에 있어 기존의 학연, 지연을 모두 무시하고 오직 실력으로 선발하였고 모두가 공정한 선발이었다고 인정을 한다는 점이다.

 

히딩크는 팀내 존재하는 학연, 지연 등의 이런 수직적 관계가 축구의 창의성을 말살한다고 보았고 선배가 잘못을 하면 후배라도 반드시 지적하고 수정하라는 철학을 강조했다. 당시 몇몇 고참선수들은 한국의 유교적 정서에 대한 이해부족이라고 혹평했으나 지금에 와서는 대부분의 경우 대표팀과 축구계에 존재하는 위계질서나 권위의식을 타파하기 위한 신선한 시도였고 결과적으로 20대 초반의 이천수, 박지성 등의 선수들이 탄생한 배경이 되었다고들 말한다.

 

여기서 한 가지…… ‘머니볼’의 주인공 빌리빈 단장과 ‘2002월드컵’의 영웅 히딩크 감독 사이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의 실존 인물이기도 한 빌리빈 단장은 화려한 고교시절과는 달리 불우한 프로시절을 보내다 전문 스카우터의 길로 들어선다. 원래 그는 학업과 야구를 병행한 덕분에 스탠포드 대학에서 전액장학금을 제의 받았으나 실적에 눈이 먼 전문 스카웃터의 감언이설에 속아 프로로 방향을 틀었고 아웃풋 만을 강조하는 프로의 생리에 적응을 못하여 결국은 야구를 그만두게 둔다.

 

시간이 흘러 애슬레틱스의 단장이 된 빌리는 실패했던 본인의 과거 경험을 살려 선수를 발굴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게 되고 단장 재직기단 동안 통산 4번의 리그우승과 아메리칸리그 최다 연승기록인 20연승의 대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히딩크 또한 뛰어난 프로선수로 시작한 건 아니었다. 현역시절 기대에 못 미치는 실력으로 주위의 차가운 시선을 의식해야만 했던 히딩크는 지도자로서의 재능을 알아본 스승덕분에 2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코치와 선수를 병행하게 된다. 1984년에 입단한 PSV 아인트호벤에서 순전히 운으로(코치진의 갑작스런 사퇴) 어떨 결에 감독이 되었지만, 특유의 재능을 발휘하여 리그 우승을 2번이나 만드는 성과를 보여주었다. 더 나아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네델란드의 감독이 되어 세계4,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도 한국팀의 감독으로 세계4위의 신화를 만드는 전설을 만들게 된다.

 

반면 현역시절의 화려한 경력을 믿고 코치나 감독을 맡겼다가 큰 낭패를 보고 있는 프로구단도 있다. 인터넷 검색을 치면 바로 튀어나올 분들이라서 여기서 거론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것 같아 생략하지만 어느 스포츠 기자의 말을 빌리자면 그런 분들의 특징은 “그거 밖에 못해!” “내가 다 아는 거야!”라는 말을 항상 달고 다니는 점이라고 한다. 본인들의 현역시절과 비교해 보면 지금의 선수들 실력이 영 맘에 안 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 분들이 구가하였던 명성에 어울리는 실력을 가진 선수가 과연 얼마나 될까?

 

전편에 기술한 전략과 더불어 사람이라는 존재는 판단이라는 개념에 중요한 요체가 된다. 전략도 중요하지만 (마치 히딩크의 압박수비처럼) 이러한 전략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사람은 더욱 더 중요하다. 한때는 IBM에 견줄 정도의 명성을 날리던 HP는 칼리피오리나 재임6년 동안 구제불능의 회사가 되어 버렸고, 존스컬리의 명성에도 끝없이 추락하던 애플은 스티브잡스의 복귀로 화려한 전성시대를 구가하게 되는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현명한 판단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요 몇 일간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나부터도 잘못된 판단으로 큰 손해를 본 경험이 있고, 지금도 항상 뭔가의 판단을 끊임없이 해야만 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현명한 결정이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한 정답을 아직은 찾지 못했다. 찾아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어렴풋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바로 ‘경험’에서 나오는 판단은 실패의 확률이 적다는 점이다. 아이러브스쿨의 김영삼 사장은 사업시작 1년 만에 M&A건이 찾아왔고, 웅진의 윤회장 또한 건설업과 태양광 업종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너무 큰 배팅을 하였다. 세계적인 여성리더라고 추앙을 받았던 칼리피오리나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화려한 경력의 바탕이 되었던 AT&T에서의 마케팅경력은 HP에 와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그에 반해 빌리빈과 히딩크, 그리고 스티브잡스는 철저하게 본인들의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조직을 구성하여 전투에 임하였고,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두게 된다. 마치 처음 가보는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것에 비유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내가 경험한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런 상황이 안 된다면 ‘경험했던 사람’만이라도 주변에 두고 자문을 구하는 것 만이 그나마 생길지도 모르는 오판을 최대한 줄이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건실했던 기업이 무너지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당신보다 더 많이 알고 있으니 가르쳐 들려 하지 말라!”라는 경영자의 오만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 받는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경영철학이 경청(傾聽)이고, 장남과 차남을 제치고 막내인 이건희 회장을 후계자로 지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하니 뻔한 이야기라고 그냥 웃어 넘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