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한민국이라는 회사의 인사부서가 드리는 이야기

신경수의 사람人 이야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전하는 인간 신경수의 이야기.
CEO 신경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더십 전문가이다.
마케팅을 공부하고자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우연히 듣게 된 허츠버그의 '동기부여이론'에 매료되어 진로를 HR로 바꾸었다.
10년 동안 일본에 있으면서 조직과 사람에 대한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아인스파트너의 대표로서 한국의 많은 기업체에 조직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다.

제목 현명한 판단은 어디에서 오는가 - Part1 전략
등록인 신경수 등록일 2013.12.18

2000 926 아이러브스쿨의 창업주 김영삼 사장은 야후로부터 거액의 인수가격이 담긴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동창생을 찾아 주는 사이트로 이름이 알려지면서 헤어진 첫사랑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해준 이 사이트는 1999년 김사장이 카이스트 박사과정에 재학 중일 때 만들어졌다. 같은 방에서 창업한 싸이월드의 성공에 자극 받은 김사장은 한국인에게 있어서 인맥은 성공의 키워드라는 신념으로 동창생을 찾아준다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처음에는 모교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오픈하게 된다.

 

얼마 안 있어 아이러브스쿨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디자인 된 모교사랑은 ‘불륜의 온상’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오히려 가입자가 급증하게 되고, 오픈 후 1년 만에 500, 그리고 6개월 후 1000만 돌파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새우며 지금까지 인터넷기업이 가지고 있던 모든 기록을 갈아 치우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전날 회원수가 500만을 돌파하였다는 뉴스가 보도되면서 야후에서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회원 1인당 1만원씩 계산하여 500억에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전액 현금으로 대표이사직도 그대로 유지시켜준다는 조건을 붙여서…….

 

그 당시의 500억이라는 돈이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를 알기 위하여 2000년도 부동산 시세를 조사해 보았다. 당시 전국의 아파트 가격 중에 평당 매매가가 가장 높은 지역이 서울 강남구로 평당 133만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500억이면 대한민국에서 제일 비싼 30평대 아파트를 125채나 살수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돈이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김사장은 현금 500억에 경영권 보장이라는 야후의 제의를 포기하고 부산을 기반으로 하고 있던 발포제 제조사 금양의 품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로부터 1년 후, 그는 금양에게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지분을 넘기고 회사를 떠나게 된다. 하지만 금양으로부터 지분 매각대금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세금, 이자 등이 더해져 개인 빚이 20억 원까지 불어나는 사태를 맞게 된다. 2004년 아이티아라는 아파트 기반의 SNS를 설립했지만 실패했고 중국에 가서 사업을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아 귀국했다.

 

얼마 전 평소 친하게 지내던 선배가 바로 그 전설의 김영삼 사장을 만나러 간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서둘러서 같이 따라 간 적이 있다. 약간은 마른 체구의 외모이지만 눈빛만큼은 변함없이 살아있는 그의 모습에서 왕년의 대한민국을 쥐고 흔들었던 레전드의 아우라를 느낄 수가 있었다. 객으로 따라간 입장으로 오래 있을 수 없었던 터라 평소 제일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내용 한가지만 물어보고 자리를 피해주기로 하였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어느 때로 가고 싶으신지요?”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해 주었다. 2000 9월로 가고 싶습니다. 저의 미숙한 판단으로 금양으로 지분을 넘겨버렸습니다. 인생에 이프란 단어는 없지만 조금 더 숙고하여 야후로 넘겼어야 했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사기 당하는 일도 없었을 테고 야후또한 네이버에 맞설수 있는 강력한 플랫폼을 보유하게 되었을 겁니다.

 

짧은 만남, 아쉬움만 뒤로 한 체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나의 머릿속에서 빙빙 맴도는 단어가 있었다. ‘미숙한 판단’ 그가 표현한 ‘미숙한 판단’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미숙한 판단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현명한 판단이란 무엇인가?” “남보다 현명한 판단을 하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점이 다른 것일까?”오는 내내 갖게 된 의문점이다. 항상 현명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오판도 한다. 그런데도 어떤 이는 최고의 결정이었다고 찬사를 받고 어떤 이는 최악의 결정이었다고 비난을 받는다.

 

여기 ‘미숙한 판단’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진 또 하나의 워스트케이스가 있다. 한때 학습지와 정수기 렌털사업으로 ‘외환위기를 견뎌낸 유일한 소비재 기업’이라는 칭송까지 들었던 웅진그룹의 윤석금 회장은 2012년 9월 27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의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된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팔러 다니던 외판원에서 재계 자산 순위 31위의 그룹을 만들며 ‘샐러리맨의 신화’라는 말을 들었던 그는 “내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나”하는 생각을 하며 두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는 걸 본인도 알고 있다.

 

웅진은 2007 7000억 원이라는 거액을 지불하고 극동건설을 인수했다. 문제는 극동건설 인수 시점에 태양광 사업까지 진출하며 무리하게 신규사업을 추진한 점이다. 2006년 웅진에너지를 신설한 데 이어 2008년 웅진폴리실리콘까지 설립했다. 하지만 업종의 다각화라는 이름으로 야심차게 인수했던 극동건설은 건설경기의 침체로 인하여 회생의 기미를 찾을 수 없었으며 웅진에너지 또한 2008년부터 불어 닥친 유럽發 국가부도사태의 영향으로 태양광 보조금이 전면 중단되면서 1조원 대에 가까운 투자자금이 회수불능 사태에 빠지고 말았다.

 

그로부터 3년의 시간이 흐른 2011년 9월 20 화요일 저녁 과천에 있는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그를 만났다. 저녁 10가 넘은 늦은 시간에 고위공무원 특강을 마치고 연수원을 빠져나가는 그를 1층 로비에서 간신히 붙잡아 짧은 인터뷰 시간을 얻게 되었다.

“회장님~ 요새 여러 가지로 마음고생이 많으실 텐데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느 때로 가고 싶으신지요?

4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극동건설을 인수하던 시기인데 악수였던 것 같습니다. 본전이 아까워서인지 지금도 계속 자금을 투입하게 되네요. 물먹는 하마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당시 극동건설은 웅진홀딩스로부터 4000억이라는 추가 자금을 수혈 받고도 전혀 호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룹의 골치덩어리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덧붙여서 말씀하신다. “정말로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결정을 한다. 그 중에는 ‘오늘점심은 무얼 먹을까?’하는 사소한 결정도 있고 ‘어느 학교에 진학할까?’또는 ‘어느 회사에 입사할까?’와 같은 인생의 향방을 가름하는 중요한 결정도 있다. 삶의 성공 여부는 이 모든 결정의 합으로 판가름 난다. 우리가 지금까지 결정하며 걸어온 길은 과연 현명한 판단의 연속이었을까? 더 나은 결정은 없었을까? 얼마나 현명하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질은 더 나은 상황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더 나쁜 상황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조직의 리더는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른 사람의 삶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현명한 판단력은 더욱 더 필요하다. 리더가 얼마나 현명하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그 조직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마크 주커버그(Mark Zuckerberg)가 학교 기숙사에서 페이스북을 만든 시기가 2004년 2월 4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무려 5년이나 빨리 사이트를 오픈한 김영삼이라는 인물이 주커버그를 대신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며, 윤석금 회장이 창업동지들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표현대로 ‘잘못된 판단’이 없었더라면 ‘샐러리맨의 신화’는 아직도 진행형으로 남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         Part 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