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한민국이라는 회사의 인사부서가 드리는 이야기

신경수의 사람人 이야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전하는 인간 신경수의 이야기.
CEO 신경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더십 전문가이다.
마케팅을 공부하고자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우연히 듣게 된 허츠버그의 '동기부여이론'에 매료되어 진로를 HR로 바꾸었다.
10년 동안 일본에 있으면서 조직과 사람에 대한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아인스파트너의 대표로서 한국의 많은 기업체에 조직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다.

제목 무간지옥無間地獄에 갇힌 사람들
등록인 신경수 등록일 2014.12.16

기업이 왠 만큼 규모가 커지게 되면 대외협력팀이라는 부서를 만들게 된다. 이름만 들어서는 기업의 이름을 알리기 위하여 외부에 있는 다른 기업이나 공공기관들과의 공동사업을 추진하는 팀이지 않을까? 하는 인상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 팀의 주요업무는 공무원, 정치인을 상대로 자사의 비즈니스를 원활히 추진하기 위해 필요한 각종 청탁, 로비 등을 담당하는 부서이다. 갑도 그냥 갑이 아닌 슈퍼 갑에 계신 분들을 상대로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자리이다 보니 자존심이 센 사람은 하루를 못 버티고 나간다고 한다.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고시를 준비하다 내리 5년을 떨어지고 할 수 없이 생계유지를 위해 모 대기업에 취업을 한 후배가 있다. 평소 얌전하고 조용한 성격에 꼼꼼함이 더해져 기획분야에 제격이라고 생각이 되었던 이 친구가 갑자기 대외협력팀으로 배속이 되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관청에 계신 분들을 상대하는 대관對官업무 담당자가 된 것이다. 아마도 출신학교와 전공이 작용했던 모양이다.

 

평소 이 친구가 술만 마시면 자조 섞인 어투로 하는 말이 있다. “경수형, 내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아세요? 예전에는 자존심 빼면 시체였는데, 지금은 자존심 따위는 출근하면서 냉장고에 넣고 나와야 해요~ 담당하는 공무원, 국회의원 보좌관의 온갖 개인 심부름은 물론이고, 때 되면 돈 봉투도 줘야 하고, 회사의 주식정보도 비밀리에 알려 줘야 하고요, 하지만 내가 그들의 비위를 맞춰주지 못하면 회사가 추진하는 여러 사업들이 제동이 걸려서 제대로 추진이 안돼요~, 더럽지만 조직을 위해서는 내 개인 감정 따위는 버려야 합니다!”

 

조직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해야 한다는 그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15년 전의 신경수가 생각이 났다. 지금은 부동산 거물이 되어 명동의 큰 손이 되신 어느 회장님과 관련된 충격적인 일화는 그 분의 하나뿐인 외동아들의 고백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경수형, 형은 정말 우리 엄마가 죽었다고 생각해요?”

무슨 소리야? 돌아가셨잖아! 엄마 없는 아이라고 너 잘 부탁한다고 나한테 얼마나 신신당부하셨는데 그래!”

형은 나보다 한참이나 나이가 많으면서도 어쩜 그리 순진하세요? 우리 엄마 아직 살아있고요, 지금 정신병원에 입원해 계세요. 그것도 우리 아빠 때문에!”

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지금 사귀는 젊은 여자하고 결혼하려고 거짓말 한 거예요! 새로운 여자가 생기면서 엄마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주변에는 죽고 없는 거라고 말하고 다니는 거예요! 물론 그런 치밀한 거짓말 때문에 결국은 그 여자하고 다음달 결혼하게 되는 거지만, 어찌되었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 아빠한테 속고 있는 거라 구요! 지금 하고 있는 자선사업도 그 여자하고 결혼하려고 거짓으로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 아빠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가 위선투성이에요! 저는 우리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요! 그래서 저를 일본으로 보내 버리려고 형한테 이렇게 지시한 거예요!”

 

소설 속에서나 나올 듯한 이야기이지만 사실은 실화다. 15년 전, 몸담고 있던 일본 법인이 철수하고 일본으로 돌아가느냐? 그냥 한국에 남느냐? 의 기로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시절, 일을 하다 알게 된 어느 회사 사장님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비록 용역을 받아 일하는 입장에서 만나긴 했지만 그 사장님 회사의 일을 하면서 나는 그 분에게 많은 감동을 받았었다. 시골에서 맨주먹으로 상경하여 본인의 노력만으로 수백억의 매출을 일으키는 튼실한 기업을 만든 것에 대한 경이로움도 있었지만, 가지고 있는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면서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많은 선행을 베풀고 있었다는 점 때문에 그 사장님의 제의가 들어왔을 때,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저 없이 그 회사에 합류하게 되었다.

 

내가 배속된 부서는 기획실이었다. 말이 기획실이지, 중소기업의 기획실은 사장과 관련된 개인업무를 보는 곳이나 마찬가지이다. 입사하고 한 달이 지난 시점에 사장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그리고 이렇게 지시를 내렸다. “나에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이 아이를 일본으로 유학을 보내려고 하니, 자네가 책임지고 학교부터 기숙사까지 전부 맡아서 깔끔하게 처리를 해 주면 고맙겠네~”라고 말씀을 하시며 두 손을 꼭 잡고 엄마 없이 자란 불쌍한 아이이니 동생이라고 생각하고 특히 더 신경 써 주면 고맙겠다 라고 인간적인 당부까지 곁들이는 것이었다.

 

당시 사장은 미모의 젊은 피아니스트와 한창 열애 중이었다. 아마도 이런 모습을 보이기가 싫어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눈물을 머금고 해외로 보내는 것일 것이다라고 생각한 나는 개인시간을 쪼개가며 학교며 기숙사며 불편함이 없는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한달 후,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무척이나 가까워진 우리는 그리 적지 않은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형, 동생이라는 호칭을 써가며 격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도쿄에서의 마지막 밤, 그 동안 정들었던 그 친구가 눈물을 흘리며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이야기를 폭풍우처럼 쏟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로 돌아 온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내 위의 직속상사였던 기획실장에게 이 문제를 가지고 상담을 하였다. 기획실장의 답변이 더 충격적이었다. “사장과 오랜 시간 함께 지내 온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야! 그보다 더한 일도 많은데, 뭐 그 정도 가지고 그리 호돌갑이야! 경수씨도 참 순진하네~ 그래 가지고 조직생활 하겠어?” “우리사장을 지키는 것이 조직을 지키는 거야~ 그러니 다른 사람한테는 절대 말하지 마!”라는 말로 그 분께서는 오히려 나를 설득하려 하셨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사표를 내고 실업자가 되었다. 그곳은 평소 내가 생각하던 가치관과 너무나 다른 세상이었던 것이다.

 

조직을 위한다는 명분아래 용서받지 못할 악행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대표적 인물로 나는 고문형사이근안을 꼽고 싶다(물론 이근안보다 더 한 인물로 백범 김구선생을 암살한 안두희가 있다. 하지만 그는 죽기 전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생을 마감하였다). 이근안씨는 80년 군사독재시절에 학생, 재야인사 등 민주화 운동가들을 죽지 않을 정도의 특별한 기술로 고문하여 악명을 높인 고문기술자이다.  공안분야에서는 이근안이 없으면 수사가 안 된다는 말이 돌 정도로 이근안은 그 만의 특별한 고문기술로 민주화 인사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이근안에게 당한 고문으로 평생을 반 불구로 산 인물이 수백 명에 이르지만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인물이 김근태 前의원이다. 김근태 의원은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인물로서 12년에 걸친 투옥생활과 7차례의 구류, 그리고 이어지는 가택연금 등으로 그의 삶은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과 괘를 같이하는 파란만장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파노라마 같은 그의 인생도 2011년 12월 30 끝이 난다. 세상과 작별을 고한 것이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인死因은 이근안으로부터 받았던 고문의 후유증이었다.

 

지금은 어디론가 잠적하여 연락이 두절된 이근안씨가 한 말이다. “조국을 위해서 빨갱이들을 고문한 게 뭐가 잘못이란 말인가? 오히려 나한테 훈장을 줘야 하지 않나?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은 뜨거운 조국애의 발로에서 시작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한 행동을 반인륜적인 행위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것이다! 라고 말해서 많은 사람들의 공분公憤을 샀다.

 

멀쩡한 부인을 정신병원에 보내버린 사장의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반인륜적인 고문을 자행하고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근안. 그들의 공통점은 그 들 모두 자신들의 행동을 조직을 위한다는 명분아래 정당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잘못된 프로퍼겐더Propaganda 때문에 선과 악의 구분능력을 상실해 버린 것 같다. 어찌 보면, 모두가 무간지옥無間地獄에 갇혀 괴로워하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