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한민국이라는 회사의 인사부서가 드리는 이야기

신경수의 사람人 이야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전하는 인간 신경수의 이야기.
CEO 신경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더십 전문가이다.
마케팅을 공부하고자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우연히 듣게 된 허츠버그의 '동기부여이론'에 매료되어 진로를 HR로 바꾸었다.
10년 동안 일본에 있으면서 조직과 사람에 대한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아인스파트너의 대표로서 한국의 많은 기업체에 조직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다.

제목 핵심가치 Part 1 <폼 나는 슬로건으로>
등록인 신경수 등록일 2015.04.13

<Episode 1>

간단한 방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끔 생각이 나는 아주 특별한 회사가 하나 있다. 구미공단에 위치한 어느 중견 자동차 부품업체였는데, 불과 1~2시간의 짧은 방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이 회사가 인상 깊게 나의 머릿속에 각인 된 이유는, 그 회사를 방문한 날이 그 해 들어 가장 추웠던 날로서 매서운 한파가 전국을 덮치는 뉴스와 함께 난방사용량이 연 최고치를 기록하였다는 점과 그 회사의 너무나도 철저한 비용절감의지때문이다.

 

우선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흔적을 여기저기서 느낄 수가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의 정 중앙에 비용절감이라는 표어가 적힌 커다란 목공간판이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압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복도의 왼편, 오른편에는 붉은색 페인트로 칠해진 플랜카드가 걸려있는데, 그 내용 또한 전부 비용절감과 관련된 문구일색이다. 예를 들면, ‘비용절감 실패는 회사가 망하는 지름길등과 같은 거의 그런 류의 표어들인데 색깔이 전부 붉은색이다 보니 전쟁터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직원의 안내로 들어선 접견 실에서 담당임원을 기다리는데 뒤편에서 미팅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려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외부인이 있으면 대화내용에 신경을 쓸 법도 한데 전혀 개의치 않고 큰 소리로 대화하는 모습이 조금 의아했지만, 그 정도로 여기 사람들은 서로간에 비밀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며 본의 아니게 대화내용을 엿듣게 되었다.

 

무조건 10% 깎으세요!”

아니 여기서 어떻게 더 깎으라는 겁니까? 정말 너무 하시는 거 아니에요?”

가격다운 안 하시면 다른 데로 발주할 테니 알아서 하세요!”

너무 그렇게 야박하게 하지 마시고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잘 아시잖아요~ 무조건 연간 10%씩 납품가격 다운시키는 것이 저희 회사 경영방침인 거!”

 

말로만 듣던 갑질이란 게 저런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듣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기다리고 있던 인사담당 임원이었다. 라포르 형성을 위한 상투적인 언어가 오고 가고 본론으로 이야기가 들어갔다.

 

기술혁신이 저희 회사의 핵심가치인데 영 전파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는 질문과 함께 핵심가치Core Value 전파를 위한 자문을 구하기 시작한다. 그분의 말을 빌리자면, 자동차 메이커들의 경쟁력이 갈수록 치열해 지는 상황에서 하청업체의 기술개발에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모양이다. 해년 마다 10% 정도씩 품질개선을 요구하고 있고 이런 요구사항에 맞추지 못할 경우 거래처를 바꾸겠다고 선언을 한 모양이다. 이러한 절박한 심정에서 기술혁신이라는 키워드가 나왔고 몇 년째 사장이 직접 나서서 수 없이 강조를 하고 있지만 품질개선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어 답답한 상황이라고 한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이 회사의 핵심가치가 정말 기술혁신인가? 하는 의문점이 일기 시작했다.

 

핵심가치란 우리 회사를 지탱하는 기둥 같은 것입니다.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직원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영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직원 모두의 입에서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나올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정말로 이 기업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암묵적인 지배언어가 기술혁신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는 질문을 던져 보았다. 나의 질문에 대한 담당임원의 답변은 의외로 빨리 나왔다. “, 맞습니다. ‘기술혁신입니다!”

 

마침 뒷자리에서 미팅이 끝나고 나가는 직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실례를 무릅쓰고 그 직원에게 돌발질문을 던져 보았다. “이 회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한 가지만 꼽으라면 무엇을 꼽으시겠습니까?” 갑작스런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예상외로 답변은 빨리 돌아왔다. “비용절감이요!” 그 뒤의 언어는 생략하겠지만, 척 보면 모르겠느냐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그 직원은 총총히 접견 실을 빠져나갔다.

 

들으셨죠? 제가 느낀 이미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변을 둘러 보십시오! ‘기술혁신이라는 그림이 그려지는지? 제가 느끼는 이미지는 비용절감을 위해서라면 회사의 핵심기술도 전부 빼내서 동남아로 이전시킬 분위기인데요…….”

“……”

 

<Episode 2>

국내 최대 임플란트 제조업체인 오스템 임플란트가 치과의사 수십 명에게 억대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작년에 대대적인 검찰수사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사실 치과협회나 치과의사들에게 제공하는 이 회사의 뇌물이나 리베이트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회사는 10년 전에도 자사제품의 구매율이 높은 치과의사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대상으로 수억 원 대의 해외여행을 지원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국민적 질타를 받은 적도 있다. 알고 보면, 유사한 종류의 마케팅 활동으로 언론에 이름을 알리는 희한한 홍보활동을 하기로 유명한 회사이다.

 

오스템과 관련된 이야기로 시작은 하였지만 오스템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오스템의 뒤를 따라가는 회사들의 이야기를 잠깐 하고자 한다. 최근 의료보험 적용이 가능해 지면서 우리나라 임플란트 시장은 급격히 팽창하게 되는데 1위는 당연 시장점유율 50%를 자랑하는 오스템 임플란트이고 나머지 50%를 가지고 약 10여 곳에 이르는 군소업체들이 나눠먹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중의 한 군데를 아는 분의 소개로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다. 이 회사 또한 그들의 핵심가치를 품질향상에 두고 있었는데, 그 회사의 임원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이 회사가 표방하는 핵심가치는 품질향상이 아니라 영업력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본부건물뿐만 아니라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에도 온통 품질향상이라는 표어가 붙어 있고, ‘올해는 반드시 획기적 품질향상을 이루자!’라는 대표이사의 신년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조직을 지배하는 암묵적 요구사항은 영업력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경영진과 함께한 식사자리에서였다.

 

신사장님, 혹시 오스템에 대해서 잘 아시나요?”

아니요~ 잘 모르는데요 ^^;”

다른 건 필요 없고, 무조건 오스템과 같이 마케팅이나 영업력이 탁월한 조직으로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자신 있다고 말씀해 주시면 일을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대표님께서 원하시는 회사의 경쟁우위는 기술력이 아닌가요? 신년메시지에도 품질향상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 같은데…….”

그건 말이 그렇다는 거구요~ 뭔가 폼 나 보이게 하려고 만든 슬로건에 불과하니 너무 개의치 말기 바랍니다.”

“……”

 

사실 나는 오스템이라는 회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오스템의 강점 및 경쟁우위는 촘촘하고도 끈끈한 영업력에 있다는 사실을 그 회사의 주관 증권사에 있는 친구로부터 들은 후로는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오너의 추문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떨어지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오히려 치과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기발한 영업활동에는 끝없는 감탄사만 나올 뿐이다. 이러한 그들의 특이한 마케팅 노하우는 최근 중국시장의 급격한 성장세에도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한다.

 

좋든 나쁘든 표어나 슬로건은 하나로 통일 하는 것이 좋다. 속으로는 검은색을 원하면서 폼 나게 보이기 위해서 하얀색을 원한다고 외치게 되면 구성원들이 헛갈려 한다.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거야!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검은색이든 빨강색이든 정정당당히 외치고 밀고 나가는 순간 How2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어쩌면 조직의 미래를 위한 정직한 How2도 충분히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건전한 실행전략 두 가지 정도는 충분히 뽑아 낼 수 있는데 자꾸 폼 나 보이게 하려고 위선을 까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