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한민국이라는 회사의 인사부서가 드리는 이야기

신경수의 사람人 이야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전하는 인간 신경수의 이야기.
CEO 신경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더십 전문가이다.
마케팅을 공부하고자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우연히 듣게 된 허츠버그의 '동기부여이론'에 매료되어 진로를 HR로 바꾸었다.
10년 동안 일본에 있으면서 조직과 사람에 대한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아인스파트너의 대표로서 한국의 많은 기업체에 조직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다.

제목 시민의식이 한 단계 더 올라가면 좋겠다
등록인 신경수 등록일 2015.06.05

얼마 전에 부모님과 형님네, 누이네를 포함하여 이제는 성인이 된 조카아이들도 참가한 대규모 가족여행이 있었다. 그 여행에서 있었던 일을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모처럼의 가족여행이라 즐거운 마음을 안고 한적한 시골길을 기분 좋게 드라이브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 좌석에 앉아있던 조카아이들이, “저 아저씨들 좀 봐~ 어떻게 창피한 줄도 모르고 저럴 수가 있지@@”하며 한심하다는 듯한 말투로 서로간에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길래 그러나? 하고 뒤를 돌아보며 그녀들의 시선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다. 대낮이었는데 도로변에서 어떤 농부 아저씨들이 막걸리를 마시며 노상방뇨를 하고 계시는 것이었다. 어릴 적에 시골에서 자란 내 눈에는 그리 낯선 풍경도 아니건만, 서울에서 자란 조카아이들 눈에는 영 상식에 어긋난 행동으로 보인 모양이다. 가는 내내 상식이 없다는 둥, 개념이 없다는 둥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어, 시골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수준까지도 도마 위에 올라 비난을 받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다 큰 처녀들에게 못 볼 것을 보여준 사람들이 마치 내가 아는 사람들인 것처럼 찝찝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 대화 속의 주인공들이 나 어릴 적에 많이 접한 순박한 시골 아저씨들의 모습이어서 그런 모양이다. 아무튼, 시골사람이라고 모두가 다 저렇지는 않다는 걸 보여주려고 뭔가 착한 모습을 찾고 있는데, 이 아저씨들이 한술 더 떠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노래를 하는 것이었다.

 

순박하고 착한 시골의 이미지가 술 취하신 분들 때문에 망가졌다는 생각을 가지며 서울로 올라왔다. 학원에 가버린 아이들 때문에 한가해진 아내가 집에 들어오자 마자 극장엘 가자고 보챈다. 마침 아내의 취향에 맞는 영화가 있어 망설임 없이 표를 끊고 극장으로 들어갔다. 줄리안 무어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스틸앨리스>라는 영화였다.

 

불과 50이라는 젊은 나이에 조발성 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을 잃고 죽어가는 자존심 강한 어느 여교수의 인생이야기이다. 사라져 가는 기억 때문에 삶의 의지를 상실해 버린 주인공을 향해 그녀의 남편이 당신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가든 나의 사랑은 변치 않을 거야라는 달콤한 독백을 들려 주려고 앨리스를 쳐다보는 신scene이 있었는데, 바로 그때였다. “당신이 부르면 달려갈거야~ 무조건 무조건이야~”로 시작되는 트로트 벨소리가 울리고, 한껏 분위기가 고조되어 가던 극장 안은 삽시간에 얼음처럼 굳어져 버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벨소리 주인공의 목소리…… “뭐라고? 지금 극장인데, 잘 안들려~ 크게 말해!”라고 말하며 상대방과 대화를 이어가는 중년 노신사의 통화 음이 극장 안에 계속 울리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이 쳐다보거나 말거나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한 눈치였다. 엊그제 지하철 안에서 볼륨을 크게 틀어 놓고 스마트폰 TV를 시청하는 막무가내 아저씨를 다시 본 듯한 데쟈뷰 현상이 느껴지는 상황이다.

 

쩌렁쩌렁 울리는 핸드폰 소리 때문에 다소 불쾌하긴 했지만 그래도 좋은 영화를 보고 나왔다는 생각에 다시 행복한 기분으로 돌아온 나는 극장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밖으로 나오니 4차선 도로가 꽉 막혀 차들이 뒤엉켜 있는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뭔가 하고 유심히 드려다 보니 고급승용차 한대가 2차선 도로에 주차되어 있는 바람에 병목현상이 생겨 주변 도로가 난리가 난 것이다.

 

주차요원의 말을 들으니,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그냥 2차선에 차를 대고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이렇게 된 것이라고 한다. 희한하게도 이런 주차문제를 발생 시키는 차를 보면 대개가 고급 외제차이던데…… 아니나 다를까, M으로 시작하는 외제차다. 이것도 머피의 법칙이라고 해야 할까? 시골에서부터 시작하여 극장, 주차에 이르기까지 3가지 사건을 모두 경험한 아내가 이렇게 말한다. ‘도대체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자기 밖에 모르는 걸까요?”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국민들에게 G12에 들어가는 경제대국이라고 홍보한다. 학교에서도 세계 경제대국 12위에 들어가는 국가의 국민이니, 자부심을 가지고 못사는 나라 사람들을 보면 도와주어야 한다고 아이들을 교육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간에 전쟁을 이겨내고 도움을 받는 국가에서 도움을 주는 국가가 되었고, 가장 빠른 시간에 IMF 구제금융의 사슬에서 벗어날 정도로 영리하고도 현명한 국민이라고 자랑한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도 TV, 스마트폰과 같은 첨단소재를 기반으로 한 일부 디지털 기기에서는 시장 점유율이 세계 1위를 자랑한다. 하지만, 과연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에 어울리는 문화적 기반과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지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YES’라는 답변은 그리 쉽게 나오지는 못할 것이다. 보이는 모습과 달리 내용을 들여다보면 여기저기 허점이 너무 많고 기초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그럴 듯한 포장지는 부실한 내용물을 만회하기 위한 기만책으로 쓰여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반대로 내용이 알차면 포장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외형보다는 내실을 중요시 여기는 사회구조가 지속적 성장을 담보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의 경제수준과 문화수준의 괴리감은 현재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경제와 문화의 괴리감이 크게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2가지를 떠올려 본다. 첫 번째는 80년대 고도성장을 하면서 무시해온 기본적인 시민의식이 아직도 방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가 부족했던 농어촌지역이나 50대 이상 장년층의 경우는 풍요로운 디지털 문명의 이기는 누릴 기회가 많았지만 수반되는 문화의식은 어디서 배울 기회가 없다 보니 문명과 문화사이의 인지부조화 현상이 여기 저기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1등만을 강조하는 사회구조적 문제이다. 특히 시민의식의 발아기라고 할 수 있는 어린 학생들에게 있어 1등만 강요하는 교육구조는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예를 들면, 우리는 아이들이 성적표를 받아 가지고 오면 몇 등 했어?”라고 물어 본다. 하지만 문화가 강한 국가는 어떻게 공부했어?”라고 물어 본다. 결과보다는 방법과 기초를 더 중요시 여기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결과를 더 중요시 여기는 우리의 교육구조는 결과로 모든 것을 합리화 해 버리는 불구자만 양산해 낼 뿐이다.

 

선진국의 사회구조를 들여다 보면, 어느 한 영역의 성장만을 유달리 강조하지는 않는다. 사회모든 영역의 구조, 요소가 고르게 성장해 가는 모습을 강조한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는 최근 『제자리로 돌아가라』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 없이 어느 한 부문을 바꾸겠다고 아무리 외쳐봐야 실질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일과성으로 끝나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뿐이다. 사회는 유기체와 같다. 한 부문을 바꾸려면 연관된 모든 부문을 함께 바꿔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정신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하지만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지고 있는 국가의 국민들은 목적지를 향해 달려 가면서도 종종 뒤를 돌아 본다. 혹시나 나만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뒤쳐지는 사람은 없는지? 살펴보면서 달린다. 멀리 가기 위해서는 다같이 가야지 순조롭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경제의 성장과 보조를 맞추어 문화의 수준도, 사회적 성숙도도 함께 성장해 가는,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