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한민국이라는 회사의 인사부서가 드리는 이야기

신경수의 사람人 이야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전하는 인간 신경수의 이야기.
CEO 신경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더십 전문가이다.
마케팅을 공부하고자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우연히 듣게 된 허츠버그의 '동기부여이론'에 매료되어 진로를 HR로 바꾸었다.
10년 동안 일본에 있으면서 조직과 사람에 대한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아인스파트너의 대표로서 한국의 많은 기업체에 조직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다.

제목 내 마음속의 아버지를 죽여야 한다 3
등록인 신경수 등록일 2015.05.19

사실 장황하게 나와 내 친구의 이야기로 시작을 해 보았지만, 최근 비슷한 상황에 처한 어느 CEO 때문에 지금은 기억에서 아련해진 옛날 이야기를 꺼내 본 것이다.

 

“저는 어린 시절을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만 생각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지긋지긋한 가난이기 때문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학교 수돗물로 배를 채웠다고 하면 6.25때 이야기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70년대에 제가 바로 그런 가난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점심시간만 되면 조용히 밖으로 나와 수돗물로 배를 채우곤 했으니까요. 너무 가난하게 자랐기 때문에 낭비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을 수가 없습니다. 덥지도 않은데 에어컨을 켜 놓고 있는 사람들, 불 켜놓고 퇴근하는 사람들, 얼마든지 이면지를 쓸 수 있는데 무조건 새 종이만 쓰는 사람들…….

 

오래 전에 어느 모임에서 알게 된 어느 CEO의 독백이다. 임원 리더십연수를 앞두고 경영진들의 행동특징과 관련하여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사장의 심각한 절약정신 때문에 직원들이 너무나 힘들어 하고 있다는 피드백을 많이 접하게 되었고 이러한 피드백에 대하여 해당기업의 사장이 한 참을 망설이다가 어렵게 꺼낸 어린 시절의 본인 이야기였다.

 

사장의 투철한 절약정신에서 나온 건지는 몰라도 그 회사는 점심시간에는 무조건 사무실의 불을 꺼야 한다. 아무리 더운 여름철에도 에어컨은 절대 틀지 않는다. 대신 전 직원들의 책상 위에는 부채가 하나씩 보급이 된다. 내부에서 올라오는 결재의 종이도 물론 이면지를 써야 하고, 숙박비가 청구되는 국내 출장은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해외출장도 10만원 이상의 호텔은 예약할 수가 없다고 한다.

 

물론 직원들 회식비용도 인당 1만원 이상은 넘어 본 적이 없으며 임원들 회식비 또한 상한선이 2만원이라고 한다. 법인카드 사용은 금지되어 있으며 회사가 지출하는 비용과 관련해서는 매월 사장의 주재아래 별도의 회의가 소집되어 꼼꼼히 체크하고 있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죽어나는 것은 CFO. 비용집행과 관련하여 위 아래에서 나오는 비난의 화살을 전부 본인의 몸으로 막아내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그 회사 CFO의 평균 재직기간은 1년을 넘지 못한다고 한다.

 

그 분에게는 가난과 관련하여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것이 있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숨기지 말고 회사의 경영진들에게 털어 놓으라고 조언을 드렸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고쳐야 할 점이 있으면 어디를 어떻게 고치는 것이 좋은지도 피드백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 분께서는 나의 조언대로 쉽지 않은 결정을 해 주셨다. 5명의 임원들이 모인 리더십 연수에서 가난 했던 어린 시절을 담담히 이야기하셨고, 비용지출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설명을 해 주셨다. 그리고 이런 성격 때문에 모두가 힘들어 하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는 말씀도 덧붙여서 해 주셨다.

 

사장의 자기독백이 끝나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참기 힘든 이런 어색한 침묵은 질색이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개입한다면 상황이 더욱 나빠질 것은 불 보듯 뻔하기에 어색하긴 하였지만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다행히 이런 어색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영업본부장이 조용히 사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몰랐습니다. 사장님에게 그런 힘든 시절이 있었는지는……. 시골 부잣집에서 자란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사장님이 왜 절약을 강조하시는 지 이제서야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사장님, 지금의 우리회사의 규모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작은 구멍가게가 아니지 않습니까? 또한 요즘 젊은 직원들의 사고구조도 한 번 고려해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요즘 세상에 우리처럼 이렇게 구두쇠처럼 생활하는 회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장님의 이런 경영스타일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유능한 직원들을 붙잡고 있기는 거의 불가능할 겁니다.

 

그 또한 이번 연수를 통하여 자신의 성격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 점, 그 성격에 대하여 주변사람들의 이해도 구하고 또 그들과 함께 개선점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고 말을 하였다. 그러면서 “사장님이 더욱 더 훌륭한 경영자가 되기를 바라는 진심 어린 마음에서 어려운 피드백을 드리는 것이니 심각하게 고민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을 이었다. 거기 참석한 임원들 모두 자신들이 함께 일하고 있는 대표이사가 이제는 어린 시절 불행했던 과거와의 단절에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물론 그 연수가 끝난 후, 그 회사는 다른 보통의 회사처럼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장의 개인적인 구두쇠 행동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연수 전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자신의 사적인 구두쇠 생활과 회사의 대표로서의 공적인 생활을 철저히 분리해서 생활하려는 의도적 노력이 눈에 띄게 보인다는 점이다. 그 분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로가슴 속 아버지를 없애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분의 눈물겨운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왜냐하면, 나 또한 아직도 여전히 노력 중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