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한민국이라는 회사의 인사부서가 드리는 이야기

신경수의 사람人 이야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전하는 인간 신경수의 이야기.
CEO 신경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더십 전문가이다.
마케팅을 공부하고자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우연히 듣게 된 허츠버그의 '동기부여이론'에 매료되어 진로를 HR로 바꾸었다.
10년 동안 일본에 있으면서 조직과 사람에 대한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아인스파트너의 대표로서 한국의 많은 기업체에 조직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다.

제목 아빠의 능력
등록인 신경수 등록일 2015.07.14

얼마 전 자영업을 하고 계시는 고등학교 선배와 저녁을 함께 하면서 들은 가슴 아픈 사연이다. 그 선배에게는 올해 2월 대학을 졸업한 딸이 하나 있는데 아직 취업을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한다. 선배 말이 딸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한다. 밥벌이를 못해 한심해서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가 사회적 루저가 된 듯한 느낌에 갈수록 주눅이 들어서 갈수록 의기소침한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이 부모로서 너무나 안타깝다는 말씀을 하셨다.

 

친구들은 아빠가 대기업 임원이라 졸업하자 마자 바로 취직이 되는데, 아빤 지금까지 뭐한 거야? 우리 집안은 왜 그리 흔한 대기업 임원하나 없는 거야?”

그 선배의 딸내미가 하루는 술을 잔뜩 마시고 들어와 아빠한테 던진 말이라고 한다. 오죽 답답하고 속상하면 저럴까? 하고 심정은 이해가 가면서도 지금까지 저 하나만 바라보며 금지옥엽 키워 준 아빠한테 할 소린가, 하는 서운한 마음이 들어 그날 저녁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고 한다.

 

경수야~ 난 왜 이렇게 무능할까?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하고 지금까지 참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눈에 넣어도 안 아플 하나 밖에 없는 딸아이 소원하나 못 들어주다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너무 무능한 것 같아

내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대학까지 보내줬으면 나머지는 본인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막상 당사자가 아니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해서, 그냥 힘 내세요 형님, 취업 해결해주는 부모는 그 어디에도 없어요!”라는 말로 위로 아닌 위로를 해 드렸다.

 

돌아 오는 내내 무능한 아빠라는 단어가 머리 속에서 왱왱거렸다. 아주 오래 전에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에 놀이공원에 가서 무작위로 뿌려주는 사은품을 못 받을 때에 자주 듣던 말이었다. “다른 아빠들은 다 타는 경품을 아빠는 왜 못 타느냐며 우리 아이들이 즐겨 쓰던 용어이긴 한데, 최근에는 들어 본 적이 없는 어렴풋한 단어이다.

 

나보다는 능력있는 큰아빠가 아이들한테는 우상이다. 방송국에서 근무하시는 형님이 있는데, 가끔 인기가요 방청권을 갖다 주기 때문이다. 지난 번에는 수정이가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의 싸인이 담긴 CD를 갖다 주셨는데, 그 이후로 형님은 능력있는 큰아빠에서 슈퍼맨 큰아빠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가 되셨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당분간은 연예, 기획엔터테인먼트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분들이 능력있는 아빠로 인정받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어땠을까? 아무래도 능력자 아빠를 가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은 20대 시절에 가장 간절히 하게 되는 것 같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기로에 선 시기이니만큼 부모가 얼마만큼 도와줄 수 있느냐에 따라 본인의 인생향배가 크게 갈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때는 병역문제가 가장 큰 이슈였다. 군대문제를 해결 해 줄 수 있는 아빠가 능력자로 인정받았고 그런 아빠를 둔 친구를 우리는 신의 아들’ ‘장군의 아들’ ‘사람의 아들로 분류하여 호칭을 붙이곤 했다.

 

능력있는 아빠를 둔 청년들의 병역문제를 도와주는 인물로 우리동네에 김상사라는 이름의 정체 모를 인물이 있었다. 한번도 본 적은 없지만 동네에서 입대를 앞둔 남자라면 한 번쯤 들어보지 않을 수 없는 전설 같은 인물이었다. 신검(신체검사)을 받으러 고향에 내려온 나에게 어머니가 갑자기 이런 말을 던지는 것이었다. “막내야~ 혹시 군대 가기 싫으면 이 어미가 손을 써서 한 번 빼보랴?”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고향에 내려간 터라 그곳 사정을 잘 몰랐던 나는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시나?”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어머니가 던진 말씀이 그냥 빈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동네에 김상사라는 이름의 돈을 받고 군대를 면제시켜주는 일종의 병역브로커가 있었던 것이다.

 

완전면제는 1천만원, 방위라고 불렸던 단기사병은 5백만원이 병역브로커 김상사가 요구한 금액이었다. 당시 사립대 인문학부의 1년 학비가 100만원 정도였었는데 약 10배에 해당되는 금액을 내면 나도 신의 아들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이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땐 그게 가능했다. 5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장정들의 병적 기록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해 보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슈퍼맨 아빠가 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90년대 들어 도입된 전산장비의 현대화와, 2001년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아들의 병역비리를 제보한 김대업씨의 영향으로 지금은 군대문제를 해결해 주는 아빠는 사라지고 없다.  대신 취업문제를 해결해 주는 아빠가 슈퍼맨 아빠로 그 호칭을 대신하게 되었다. 저성장기로 접어들면서 촉발된 일자리문제는 능력있는 아빠의 정의도 바꿔놓고 말았다.

 

대기업의 임원 아빠를 둔 친구들은 취직이 되는데~”라고 말하며 울음을 터뜨린 선배의 딸아이가 내 뱉은 말이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대기업 중에는 자사 임원들의 직계 자녀들에 한하여 계열사에 입사할 수 있는 특혜를 주고 있는 기업들이 상당수 있다. 임원 직급을 어디에 두느냐에 차이는 있지만 거의 대부분이 전무이사급 이상 자녀에 한하여 특혜를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버지가 정치인이거나 고위공직자인 경우는 그들의 능력은 훨씬 더 빛을 발하게 된다. 우리나라 기업구조의 특성상 관청이나 정치권에서 내려오는 부탁을 거절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강직하기로 유명한 STX 그룹의 강덕수 회장조차도 아들이 개최하는 요트행사를 후원해 달라는 해군참모총장의 부탁에 뇌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7억이라는 돈을 내 놓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나는 부모들의 과잉보호가 자녀들의 인생에 과연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점이 들어 주변의 지인들을 상대로 몇 가지 조사를 해 보았다. 우선 주변의 인사담당자들에게 지난 2010년을 전후하여 외부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채용이 된 경우가 어느 정도인지를 물어보았다. 10여 개 정도의 대기업에 개별요청을 하였고 차이는 있지만 항상 2~3명 정도는 존재했었다는 답변을 얻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그렇게 해서 들어온 신입들의 절반이 1년 내에 회사를 그만 둔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마도 스스로 만든 과실이 아니다 보니 감사함을 몰랐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의 실험은, 00대학교에서 동문주소록을 만들고 있는 후배의 도움을 받아 그 학교 경영대학에 87년도에 입학한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생애경로추적을 해 보았다. 연락이 닿은 신의아들 5명과 사람의 아들 5명을 비교한 결과, 신의아들 5명중에서 1명은 실업상태, 4명은 자영업, 사람의 아들 5명 중에서 3명은 대기업근무, 2명은 공무원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낳은 새끼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뭐든지 해 주고 싶은 것이 똑 같은 부모마음이다. 나 또한 그런 상황이 되면 장기적인 관점보다는 당장의 고통을 덜어 주고자 발 벗고 나설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껍질을 깨고 나오는 새끼 새들의 생존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에서 능력있는 아빠의 사회학적 의미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