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한민국이라는 회사의 인사부서가 드리는 이야기

신경수의 사람人 이야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전하는 인간 신경수의 이야기.
CEO 신경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더십 전문가이다.
마케팅을 공부하고자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우연히 듣게 된 허츠버그의 '동기부여이론'에 매료되어 진로를 HR로 바꾸었다.
10년 동안 일본에 있으면서 조직과 사람에 대한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아인스파트너의 대표로서 한국의 많은 기업체에 조직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다.

제목 고마워요! 데보라스미스(Deborah Smith)
등록인 신경수 등록일 201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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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번째 이야기「고마워요! 데보라스미스(Deborah Smith)


2005년 1월의 어느 날, 도쿄(東京) 출장길에 눈()을 만났다. 좀처럼 눈이 내리지 않은 도쿄에 큰 함박눈이 내린 것이다. 위도상으로 보면, 서울보다 한참 아래 쪽에 위치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과거 도쿄생활 10년 동안 눈을 구경한 회수가 거의 3~4번에 불과할 정도였다. 우리가 아는 유끼구니(雪國)는 홋카이도(北海道)를 지칭하는 용어로서, 도쿄에서 눈을 본다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눈이 오는 날은 뭔가 좋은 일이 있다는 길조로 여겨지기도 한다.

밖에서 내리는 눈을 한참을 구경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친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니 기다리고 있던 친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학동기 기타무라(北村)君이다. 지금은 일본다이아몬드라는 꽤 유명한 출판사에서 마케팅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많이 기다렸지? 눈 때문에 차가 막혀서... 인사해! 이쪽은 사노신이치(佐野眞一) 선생님이라고, 유명한 작가 분이셔"라는 말과 함께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중후한 풍채의 신사 한 분을 소개해 주었다.

사노선생님은 일본 와세다 대학 문학부를 나오셔서 영화감독생활을 조금하시다가 소설을 쓰기 위해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까지 10권 이상의 책을 내셨고, 100만부 이상 팔린 밀리언셀러도 3권이나 된다고 본인을 소개해 주셨다. 친구 말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꽤 알아주는 작가 중에 한 분이라는데, "왜 나를 보자고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눈 내리는 날 이렇게 뵙게 된 게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며 그 분에게 인사를 건넸다.

"신君 이렇게 만나게 돼서 반가워요. 여기 있는 기타무라君에게서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고향이 전라도 광주라면서요... 내가 지금 80년 봄에 광주에서 있었던 일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려고 합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아서 신君이 조금 도와주었으면 해서 이렇게 소개를 부탁 드렸습니다. 아무래도 타국에서 일어난 아픈 이야기를 소재로 한 논픽션이다 보니 그곳의 생활이나 표현에 대한 디테일 한 부분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돼서요"

이런 인연으로 알게 된 선생님과의 만남은 나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물론 선생님께서는 본인이 처음에 원했던 목적달성에는 실패하셨다. 왜냐하면, 80년 광주의 봄을 말하기에는 당시의 내 나이가 너무 어렸었고,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가벼운 주제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당시 상황을 비교적 자세히 묘사한 서적을 몇 권 구입해서 중요한 부분은 번역을 하여 선물로 드렸고, 이런 나의 정성에 사노선생님은 크게 기뻐하셨다.

2008, 9년쯤 해서는 선생님께서 한국을 자주 방문하셨다. 이유는 일본소프트뱅크의 손정의(일본명은 손마사요시)회장과 관련한 소설을 쓰기 위해서였다. 손회장의 고향이 경상북도 대구였던 관계로 대구 일대에서 거주하고 있는 친척들을 탐문하며 그 분의 조상과 관련된 이야기의 소재를 얻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책이「안본 손정의」(원래 손회장의 성씨가 安本(야스모토)였던 관계로)였다. 2012년 1월 책이 발간되었고, 발간되자마자 100만부를 훌쩍 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아마도 당시 손회장이 2011년 있었던 동일본 지진피해자들에게 1,000억 원에 달하는 개인 돈을 기부하면서 국민적 인기가 올라가던 때라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이 발간되고 얼마 안 있어 선생님께서 나를 보자고 하셨다. 이유는「안본 손정의」의 한국어 번역본 때문이었다. 본인의 책을 누군가가 번역을 해서 샘플로 몇 장 보내왔는데, 정확하게 의사전달이 되었는지 한 번 체크해 달라는 것이었다.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동포 한국인에게 책의 번역을 맡긴 모양이었다.

"선생님,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내용이 너무 직역인데요... 글이란 같은 의사표현이라 하더라도 나라마다 미묘하게 뉴앙스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 나라 실생활에서 뜻이 통하는 표현으로 의역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선생님의 책은 단지 일본어를 한국어로 바꾼 것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라고 나의 의견을 전해 드렸다.

최종적으로는, 공식루트를 통해 한국에 있는 전문번역가의 손에 의해 같은 해 9월 한글판으로 발간이 되었다 (‘안본’은 빼고 ‘손정의’라는 이름으로). 번역본이 나오는 동안 정확한 글의 뉴앙스를 파악하기 위해 전문번역가와 선생님 사이에 오고 간 이메일을 보면서, 나는 소설에 있어서 번역이란 "또 다른 창작이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우연한 계기로 신경숙 작가가 쓴 「엄마를 부탁해」 의 영문판을 읽게 되었다 (영문명-Please Look After Mom). 솔직히 글의 직역적 표현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은 문학평론가이자 서울대 명예교수인 백낙청 선생님이「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남기신 글이다. "피붙이 식구들의 끈끈한 정을 이렇듯 절절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글이 몇이나 될까? 이런 위태로운 작업을 촌티 없이 멋지게 해낸 신경숙은 정말 대단하다."

이렇듯 우리나라 현대문학의 대가이신 백낙청 선생님도 극찬한 글의 ‘절절하고도 아름다운’ 표현을 영문 표현에서는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신경숙작가 특유의 문체에서 묻어나는 애절하고 절절한 문체를 표현해 낼 수 있는 영어식 표현이 분명히 있을 텐데, 번역가가 한국인이라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런 현상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고은 시인의 노벨상 실패와도 전혀 무관치는 않으리라.

번역에 대한 아쉬운 기억이 잊혀져 갈 무렵, 나의 이런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해 줄만한 큰 뉴스 하나가 보도되었다. 바로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Man Booker Prize) 수상 소식이다. 노벨문학상, 콩쿠르문학상과 함께 세계3대 문학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맨부커상에 한강이라는 이름의 우리나라 작가가 쓴「채식주의자」 (영문명:The Vegetarian)가 선정된 것이다. 우리나라 소설이 권위 있는 문학상에 선정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누가 번역을 했는지가 제일 궁금했다. 영국인 데보라스미스(Deborah Smith)라고 한다. 캠브리지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런던대학에서 한국학박사까지 받은 29세의 젊은 재원이었다. 그녀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번역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학적인 감수성이에요. ‘무엇을 말하느냐’ 보다 ‘어떻게 말하느냐’에 더 중점을 두죠. 그것이 독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거든요"라고 말하며 어떤 단어는 적절한 표현을 찾느라 3일 동안 몸부림친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만일 고은 선생님의 시집 만인보(萬人譜)가 그녀의 손을 통해서 번역이 되었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해년 마다 노벨상 수상시기만 되면 ‘혹시나’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있지는 않았을까? 이미 다른 사람에 의해서 번역이 되어 영미권에서 출간이 되어있기 때문에 이제 와서 다시 번역해 봐야 소용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다.

같은 작품이라 해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울 뿐이다. ‘누가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조직관리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맨부커상 수상은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강조하고 있는 ‘Depend on The Just Person’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해 준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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