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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수의 사람人 이야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전하는 인간 신경수의 이야기.
CEO 신경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더십 전문가이다.
마케팅을 공부하고자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우연히 듣게 된 허츠버그의 '동기부여이론'에 매료되어 진로를 HR로 바꾸었다.
10년 동안 일본에 있으면서 조직과 사람에 대한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아인스파트너의 대표로서 한국의 많은 기업체에 조직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다.

제목 블랙스완(Black Swan)의 재앙
등록인 신경수 등록일 2016.04.05
신경수의 사람人 이야기
 
131번째 이야기 「블랙스완(Black Swan)의 재앙」



경제학 용어 중에 ‘블랙스완(Black Swan)효과’라는 용어가 있다. 기원은 이렇게 시작된다. 우리는 백조(白鳥)하면 으레 하얀 백조를 연상하게 되는데, 이것은 우리의 선입견일 뿐 검은 백조, 즉 흑조(黑鳥)도 있다는 것이다. 1697년 영국의 자연학자인 존 라삼이 호주 서쪽에 있는 스완강에서 검은 백조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의 발견은 기존의 선입견을 일거에 무너뜨리면서 사람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이후 블랙스완은 ‘불가능하다고 인식된 상황이 실제 발생하는 것’ 또는 ‘사실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발생하기 전까지는 전혀 예측 못했던 대사건’ 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경제학 용어가 되었다. 예를 들면, 1995년에 있었던 ‘삼풍백화점의 붕괴’나 1997년에 발생환 ‘IMF구제금융’처럼, 발생 당시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아우성을 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미 예고된 사고였음이 밝혀지는 사고나 사건들을 말한다.

1995년 6월2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멀쩡한 5층짜리 건물이 마치 폭탄을 얻어맞은 것처럼 붕괴되었다. 1989년 완공된 삼풍백화점은 지상 5층, 지하 4층짜리 건물로 처음 설계 시에는 종합상가 용도로 설계가 되었으나, 건물구조 전문가의 정밀한 진단 없이 백화점 용도로 변경되었다. 완공 이후에도 무리한 증축공사를 시행하였고, 사고발생 7개월 전인 1994년 11월에는 위법건축물 판정까지 받게 되었다.

사고발생 1주일 전부터는 벽면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사고당일 오전에는 5층 천장이 내려 앉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영진은 영업을 중단하지 않고 보수공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사고 당시 백화점 안에는 고객 1,000여명과 직원 500여명이 있었다. 오후 5시52분부터 건물이 무너지기 시작하여 불과 20초 만에 2개 건물 중에 1개 동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이 사고로 인한 피해자는 사망 502명, 실종 6명, 부상 937명으로 6.25이후 가장 큰 인명사고로 기록이 되었다.

그리고 2년 뒤, 1997년12월3일 대한민국정부는 국제통화기금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양해각서를 체결하였다. 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도산하면서 외환보유액이 급감한 탓에 국가부도사태가 임박한 것이다. 외환위기 속에 대한민국은 외환보유액이 한때 39억 달러까지 급감했지만, IMF에서 195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아 간신히 국가부도 사태는 면했다.

IMF 환란의 직접적 원인은 크게 2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기업들의 지나친 차입경영이다. 기업운영에서 수익성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성장률 위주로 나갔고, 현금흐름은 없으면서 차입을 과도하게 한 결과, 30대 기업의 부채비율이 400%에 이르렀다. SERI(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97년 당시의 상황을 보면, 상장기업의 2/3가 영업을 해도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으로써 90년대 중반의 고도성장은 사실 빚 잔치였다고 보고했다.

두 번째는 정부의 외환관리정책의 미숙과 실패에 있었다. 사실 우리나라는 97년도에 들어서면서부터 삼미, 한보와 같은 대기업들이 연쇄 부도를 내면서 불안한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대외적으로는 태국, 홍콩,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과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외환위기가 연쇄적으로 발생하면서 우리도 안전치 않다는 신호를 이미 수 차례 수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김영상 대통령은 97년 11월 10일 강경식 경제부총리의 보고를 받기 전까지는 외환위기의 심각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IMF구제금융에서 벗어나고 당시의 상황을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IMF사태는 충분히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사태였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너무나 갑작스런 국가부도사태에 모두가 넋을 놓고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쓰고 보니 글이 길어졌지만, 사실 이렇게 장황하게 블랙스완효과에 대해 나열한 이유가 있다. 바로 엊그제 ‘현대상선을 어쩌나… 현대차만 쳐다보는 현대그룹’이라는 제목으로 발간된 3월22일자 국민일보 1면 머리기사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현대상선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그룹은 파산직전의 현대상선을 구원할 구원투수로 현대차그룹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은 2000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故정몽헌 현대그룹 회장간의 ‘왕자의 난’을 통해 이별했다. 정몽구 회장이 현대자동차를 가져가고 정몽헌 회장이 그룹의 주축이던 현대건설과 현대증권 등을 맡았다. 사실상 정몽헌 회장의 승리로 인정을 받았으며 당시에 중간자적 위치에 있던 상당수의 직원들은 미래가 불분명한 현대차 대신에 현대그룹 쪽으로 많이 들 이동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1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현대가의 적통을 이어받아 세계100대 기업으로 성장할거라며 당찬 포부를 보여주었던 현대그룹은 그룹 매출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주력계열사 조차도 지키지 못하는 초라한 기업으로 전락해 버렸다. 금융현대의 자존심인 현대증권은 그룹의 생존을 위해서 지난 주 KB금융에 매각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반면, 2016년 현대차그룹의 위상은 16년 전의 모습과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위치에 서있다. 이미 2010년도에 현대그룹의 시발점이었던 현대건설을 되찾아옴으로써 현대의 적통을 잇게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현재는 매출 100조를 바라보며 세계 10대 자동차 메이커에 들어가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16년 전, ‘왕자의 난’이 일어나고 현대자동차가 현대에서 떨어져 나갈 때만 해도 오늘의 신문기사처럼 현대가 현대차에 매달리는 모습이 연출될 줄은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지금의 현대상선사태는 이미 예고된 사태였다고 말한다. 조선업의 특성상 글로벌경기 흐름에 민감하게 연동될 수 밖에 없는데 지금과 같은 경기침체는 이미 수년 전부터 On-going 상태였고, 호황기 때 벌어들인 돈은 이미 다른 곳에 다 써버린 탓에 현대상선 부도사태는 시간문제였다는 것이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현대상선문제는 현대그룹이 한 눈만 팔지 않았어도 충분히 예방 가능한 문제였다고 한다. 하지만 회생에 필요한 부담은 결국 우리 국민이 떠 안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삼풍이나 IMF이후 우리 국민이 부담했던 고통에는 비견할 바 못되지만, 어찌되었든 적지 않은 돈들이 또 투입될 것이다. 정말 반갑지 않은 블랙스완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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