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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한민국이라는 회사의 인사부서가 드리는 이야기

신경수의 사람人 이야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전하는 인간 신경수의 이야기.
CEO 신경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더십 전문가이다.
마케팅을 공부하고자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우연히 듣게 된 허츠버그의 '동기부여이론'에 매료되어 진로를 HR로 바꾸었다.
10년 동안 일본에 있으면서 조직과 사람에 대한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아인스파트너의 대표로서 한국의 많은 기업체에 조직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다.

제목 어떤 의도에서 시작이 되었는가
등록인 신경수 등록일 2017.07.25
신경수의 사람人 이야기

175번째 이야기 「어떤 의도에서 시작이 되었는가 」


1995년 3월 20일 월요일 오전 8시경 도쿄의 가스미가세키일본한자 역을 막 출발하려던 지하철이 갑자기 멈춰 섰다. 닫혔던 도어가 다시 열리고, 빨리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한다. 천정에 뿌연 안개 같은 것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쓰러지기 시작한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빨리 여기를 빠져나가야 한다는 직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랑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향하면서 넘어지고 엎어지고 소리지르고, 지하철 역사(驛舍)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해버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이었다. 병원에는 나 외에도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응급치료를 받으며 서로 간의 안부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응급실에 설치된 대형 TV로 흘러나오는 아나운서의 긴급속보를 듣고 나서야 사건의 전모를 이해하게 되었다. 옴진리교의 교주가 신도를 시켜 지하철역 안에다가 ‘사린’이라는 독가스를 유포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12명이 죽고 수백 명의 승객들이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수백 명의 환자 중에 나도 끼게 된 것이다.

나는 다행이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직접적으로 가스를 마신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1주일 정도의 가벼운 치료만 이어졌다. 아무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물론이거니와 부모님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가족, 친지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다른 환자들과는 달리 조용하게 병원생활을 즐길 수가 있었다.

그러나 딱 한 사람에게 만은 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도교수였던 하시모토(橋本)교수님이었다. 사실 방학 중임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가기 위해 그 시간에 지하철을 탔던 이유도 그 분 때문이었다. 일본의 학기는 4월에 시작한다. 때문에 사건이 발생한 3월은 학교에 갈 일이 없었다. 꼭 소개해 주고 싶은 사람이 있으니, 잠시 학교에 나오라는 그 분의 전화 한 통 때문에 학교에 가던 참이었다. 미국에서 박사과정에 있는 제자 한 명이 잠시 인사차 들르기로 했는데, 그 쪽 생활에 관심이 많은 나와 연결시켜 주고자 했던 것이다.

병원으로 실려가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나는 약속을 펑크 내 버렸다. 휴대폰도 없는 시대이다 보니 서로 간에 연락을 취할 방법도 없고, 자연히 내가 약속을 어긴 학생이 되어 버렸다. 오해를 풀기 위해 나는 응급처치가 끝나자 마자 교수님에게 전화를 드렸고, 그 분은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오셨다.

“미안하네 신君, 정말로 미안하네, 내가 부르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다 나 때문이네, 정말 미안하네”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는 나이 드신 老교수의 얼굴을 보며, “너무 미안해 하지 마세요, 교수님! 다 저를 도와주려다 그런 것인데 운이 안 좋아서 이렇게 된 것뿐이에요.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해요. 일부러 저를 위해 그런 자리를 만들어 주실 생각까지 해 주시고^^”

사실이었다. 설령 생명에 위협이 갈 정도의 위급한 처지가 된다 해도, 그 분을 탓하거나 원망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나를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시는 그 분에게 한 없는 감사의 마음만 들 뿐이었다. 결과가 좋게 나오든, 나쁘게 나오든 결과에 상관없이 최초 어떤 의도에서 그 일이 발단이 되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병원에 며칠 머무르면서 고생은 하긴 했지만 그 사건은 나와 교수님의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이어주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이런 개인적인 일화를 소개하는 이유가 있다. 아는 지인 중에 선한 의도에서 시작한 자그마한 행동이 전혀 예상치도 못한 결과를 낳는 바람에 오랜 시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은 분이 있다. 다행히도 최근에 내려 진 법원의 반가운 판결문으로 인해 마음의 짐이 일부 해소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난 건 아니다. 그 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 분의 사연을 전하고자 한다.

주인공은 A기업에서 기획본부장을 맡고 있는 박영식(가명) 이사라는 분이다. 그분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게 된 건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누구를 만나든 항상 웃는 얼굴을 트레이드마크로 삼아 상대의 마음을 훔치던 박이사가 자신이 겪은 일을 소개하며 상담을 요청해 왔다. “신대표님, 제가 요새 아주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애지중지 하던 부하직원이 좋은 일을 하다 교통사고를 만나 하늘나라로 갔는데,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업무와 관련된 사망이 아니라며 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하네요, 어쩌면 좋을 지 몰라 답답한 마음에 그래도 신대표님은 이런 저런 경험이 많으실 것 같아 조언을 좀 구하려고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면서 그가 전하는 사건의 내막은 이랬다. 경영진을 상대로 한 중요한 보고회가 있어 관련된 자료를 조사하고 수집해야 하는 일이 급하게 생겼는데, 평소에 일 솜씨도 좋고 책임감도 강한 그 부하직원에게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일의 상당량을 일임했다고 한다. 그 날도 둘은 현장을 돌며 실태조사를 마쳤고, 박이사는 바로 퇴근을 했는데 그 직원은 조사한 자료를 빨리 정리해야 한다며 회사로 향했다고 한다. 그런데, 회사로 들어가던 그 직원에게 큰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직원이 들어 가는 길에 연기를 내며 길가에 세워 진 차량 한대를 목격한 것이다. 평소에도 사회정의감이 투철했던 그 직원은, 길가에 세워진 차량 안에 사람이 있음을 발견하고 바로 119에 신고를 하고 구급차와 경찰차가 오기를 기다렸다고 하는데, 그 순간 반대방향에서 오던 트럭 한 대가 중앙선을 넘어서 그대로 이 직원을 덮친 것이다.

박이사는 유족과 함께 근로복지공단에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 달라는 신청서를 냈다고 하는데, 이 신청서가 기각된 것이다. 이유는 ‘교통사고 처리’는 그의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자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박이사는 어떻게든 공단이 재해인정을 받아들여 줄 것을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번번히 거절당했고, 급기야 법원에 소송을 냈다고 한다.

“회사 업무와 관련이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한 선한 의도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떤 식으로든 적극적인 지지를 해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조언을 구하는데, 나 또한 법적인 부분에서는 문외한 인지라 그 분야에 정통할 것 같은 변호사를 소개해 주는 것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을 대신했다.

그리고 지난 주, 서울행정법원에서 다음과 같은 판결이 나왔다.
“차량을 운행하는 사람은 누구나 도로에서 사고 상황을 맞닥뜨릴 수 있고, 그 경우 운전자는 사고를 그대로 지나치거나 자신의 차를 세우고 구조활동을 하는 행위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사고를 지나친 사람을 비난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사고를 목격하고 구조를 한 사람을, 사고를 지나친 사람보다 더 두텁게 보호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정의에 부합한다”

박이사는 성실하고 책임감도 강한 그 친구를 너무 사랑했다고 한다. 그래서 큰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에 이번 프로젝트를 맡긴 것인데, 예상치도 못한 대형 사고로 인해 순식간에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고를 당한 직원도 마찬가지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우려고 시작한 선한 행동이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만든 원인이 되어 버렸다. 선한 의도에서 시작한 이 둘의 행동을 모두가 외면하고 있을 때, 법원이 나서서 “선한 행동을 한 이의 편에 서는 것은 사회정의에 부합한다”라는 용어로 이 들의 편을 들어 준 것이다.

이번에 공시된 법원의 판결을 보면서 “선한 의도에서의 출발은 어떤 결과가 나오던 간에 모두가 보호해 주어야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한 의도를 가지고 도와주려고 한 행동이 의도치 않게 나쁜 결과로 이어졌을 때, 우리는 결과에 함몰되어 원인제공자를 원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상황에서 반드시 떠올려 볼 가치가 있는 좋은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고군분투한 박이사의 눈물겨운 가시밭길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한 없이 기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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