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한민국이라는 회사의 인사부서가 드리는 이야기

신경수의 사람人 이야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전하는 인간 신경수의 이야기.
CEO 신경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더십 전문가이다.
마케팅을 공부하고자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우연히 듣게 된 허츠버그의 '동기부여이론'에 매료되어 진로를 HR로 바꾸었다.
10년 동안 일본에 있으면서 조직과 사람에 대한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아인스파트너의 대표로서 한국의 많은 기업체에 조직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다.

제목 평범함에서 출발한 위대한 리더십
등록인 신경수 등록일 2018.01.29
신경수의 사람人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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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째 이야기「 평범함에서 출발한 위대한 리더십


2002년 한국인들이 가장 친근하게 느끼고 가장 좋아했던 나라 중의 하나가 네델란드였다고 한다. 유럽국가 중에서 우리하고 가장 교역관계가 적은 네델란드가 갑자기 무슨 이유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국가로 꼽히게 되었을까? 의구심도 잠시, 아하~ 하는 짧은 감탄사와 함께 그 이유가 금방 떠올랐다. 6월 한 달을 뜨겁게 달구었던 월드컵이 있었고, 그 중심에 '거스히딩크'라는 네델란드 출신의 감독이 있었던 것이다. 월드컵 본선에서 단 한번도 16강 진출을 해 본적이 없는 우리나라에 4강 신화를 만들어 준 히딩크 감독에게 대한민국은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고, 이런 한국인들의 사랑과 애정은 비단 히딩크라는 한 개인에만 머물지 않고 그의 조국 네델란드에 대한 한국인의 무한사랑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비슷한 현상이 지금 베트남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사업차 베트남을 다녀 온 선배의 말에 따르면, 지금 베트남은 온 나라가 '대한민국신드롬'에 푹 빠져서 어디를 가든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융숭한 대접을 해 준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축가 국가대표팀을 맡고 있는 박항서라는 이름의 한국인 감독 때문이라고 한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이 2018 아시아 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하는 파란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베트남 축구가 AFC와 같은 메이저대회에서 결승에 진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베트남 축구는 아시아에서는 변방에 속한다. 월드컵 본선진출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으며, 아시안 컵에서조차도 1960년 4위, 2007년 8강 진출 외에는 뚜렷한 성과가 없다. 2007년 8강 진출도 주최국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로서, 세계 축구의 중심에는 단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나라다. 그런 베트남에게 박감독은 세계대회 준우승이라는 트로피를 선사해 주었고 이런 공로로 그는 베트남 총리로부터 국가훈장까지 수여 받게 된다. 이쯤 되면 16년 전, 우리나라에 불었던 '히딩크열풍'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본인은 "히딩크 감독과 비교되는 것은 너무 과분하고 분에 넘치는 칭찬이다"라는 말로 겸손을 보이긴 했지만, 변방의 작은 축구팀을 세계대회의 준우승까지 이끈 그의 리더십을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길 수가 없다.

그렇다면 박항서 감독은 어떤 인물일까? 그의 경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대학졸업 후 1981년 실업팀인 제일은행에 입단해 1년 정도 선수 생활을 했다. 그러다 군에 입대, 육군 축구팀에 있다가 프로축구가 창단되면서 1984년 럭키금성에 입단한다. 그러다 5년 뒤, 선수에서 코치로 포지션을 이동한 후로는 줄곧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1994년 미국월드컵 때는 대표팀의 공격수 코치를 맡았고, 2002년 한일올림픽 때는 수석코치를 맡았다. 이후 경남FC, 전남드래곤즈의 프로팀 감독을 맡다가, 2016년 실업리그인 창원시청의 감독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이상과 같이 박항서 감독은 인생의 대부분을 코치와 감독으로 보내게 되는데 현역으로 있던 5년보다 지도자로 보낸 나머지 15년이 그의 인생을 훨씬 빛나게 해 준 세월이었다고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이쯤 되면 누구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그렇다. 바로 그가 가장 존경한 인물로 꼽으며 인생의 롤모델이라고 말한 거스히딩크 감독과 상당부분 일치한다.

다음은 히딩크의 경력이다. 1967년 네델란드 더 흐라프스합(De Graafschap)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히딩크는 1970년 PSV 에인트호번에 입단했지만, 주전자리를 얻지 못하고 1년 만에 더 흐라프스합으로 돌아가 1976년까지 선수로 활동했다. 이후 잠시 미국에서 선수로 뛰다가 다시 그의 고향으로 돌아가 1982년 현역에서 은퇴하게 된다. 현역시절 그는 훌륭한 선수로 인정은 받았으나 그다지 화려한 선수생활을 보내지는 못했다. 그런 그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지도자로 포지션을 옮기고부터다. 감독으로 데뷔한 1998년 그는 자신의 조국 네델란드를 월드컵 4위에 올려 놓았으며, 2002년 대한민국을 4위, 2006년 호주를 16강에 올려 놓았다. 2006년 월드컵이 끝난 후에는 러시아대표팀 감독을 맡아 러시아를 유로 2008 4강에 진출시키고, 2012년에는 터키를 유로 2012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는 능력을 발휘한다.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히딩크의 매직'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차범근 감독처럼 훌륭한 현역시절을 보내고 지도자로서도 탁월한 업적을 남기신 분도 계시지만, 화려한 현역시절을 보낸 선수들의 대부분은 지도자로서는 큰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래서 "선수에게 필요한 기량과 지도자에게 필요한 기량은 다르다"는 말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조직으로 치면 "탁월한 업적을 남긴 멤버가 반드시 훌륭한 관리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는 말과도 같을 것이다. 현장에서 보면, 탁월한 실적을 남긴 직원들이 리더가 되었을 때 오히려 더 트러블이 많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아마도 모든 행동기준을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본인중심의 사고로 팀원들을 바라보고 행동하기 때문에 조직력의 형성이 어려운 것이다. 반대로 보통의 멤버들 중에 관리자로 승진하여 탁월한 업적을 남긴 직원들의 행동특징을 보면, 사고의 관점을 자신이 아닌 멤버들에게 두는 경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멤버들을 이해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멤버들에 대한 뛰어난 관찰력, 통찰력으로 축구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이 여기 또 있다. 그 역시 박항서, 히딩크 감독만큼이나 선수시절은 평범했으나 지도자가 되어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 인물이다. 영국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이하 맨유)를 세계적인 명문구단으로 육성시킨 알렉스퍼거슨 감독이다. 그는 약 38년간 감독생활을 했으며 1986년부터 2013년까지 26년간 맨체스터 FC의 감독을 맡아 맨유를 세계적인 수준의 축구팀으로 만들었다. 재임 중 프리미어리그 우승 13회, 잉글랜드 FA컵 5회, UEFA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 등 총 38회의 우승 기록을 세웠으며 1999년 영국 축구 역사상 최초로 트리플크라운(리그우승, FA컵우승, UEFA챔피언스우승)을 달성한 공로로 기사 작위에 서임되기도 했다.

퍼거슨 감독은 자신이 저술한 리딩(Leading, 2016)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재능 있는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서라면 어디든 주저하지 않았다. 한 번은 우연히도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를 발산하며 경기장을 휘젓고 다니는 선수를 발견했고 그를 영입하기 위해 동생을 직접 그에게 보낸 적도 있는데, 그처럼 혼자서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선수는 정말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박지성이다---P29 "
"우리의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훈련이었다. 토요일 오후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은 이미 훈련장에서 시작된 것이다. 내가 감독 직을 수행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훈련에 임하는 선수들의 태도이다. 훈련에 진지하게 임하고 반드시 필요한 재능과 의지를 갖고 있다면, 그 선수에게 좋은 결과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게으른 선수는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 습관을 고치지 못한다---P73 "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박항서 감독도 얼마 전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일정한 기량이 쌓이게 되면 자만심이라는 것이 생기게 되는데, 지금의 한국선수들에게는 그런 현상이 종종 눈에 보인다. 반면 베트남 선수들은 순수한 태도를 갖고 있으며 강한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다. 가르치면 빨아들이고 빠르게 바뀐다. 마치 스폰지와도 같다."고 말한 것이다. 박 감독과 함께 현지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는 이영진 수석코치와 배명호 코치도 "여기 선수들을 보면 20년 전의 한국선수들을 떠올리게 된다. 더 이상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 헝그리 정신을 여기서 느낄 때가 많다"고 현지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고 한다.

일류구단을 만든 세 명의 명감독에게서 일류조직을 만든 비법을 유추해 보았다. 첫 번째는, 실력 있는 직원을 알아보는 관찰력과 통찰력이다. 우선은 재능 있는 직원을 선발하고 그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게 끔 적재적소의 배치를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목표를 향해서 죽어라 노력하고 절대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것이다. 퍼거슨도 게으른 자를 가장 싫어한다고 저서에서 말했지만, 지독한 연습과 훈련으로 대표팀을 이끌었던 히등크도 "게으른 선수는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곤 했다. 이는 박 감독도 마찬가지였는데, 위의 인터뷰에서 나오는 '헝그리정신'이 모든 것을 대변하는 단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 번째는, 그 들의 에너지가 쓸데없는 곳으로 세어나가지 않게끔 사적, 공적 비전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들은 선수들에게 목표가 달성된 이후의 세계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주었다. 국가대표를 이끌었던 히딩크와 박항서는 '조국의 영광'이라는 공적비전과 함께 해외 유명 프로구단으로의 진출이라는 사적 비전을 심어주었고, 맨유를 이끌었던 퍼거슨은 '명문구단과 함께한다'라는 자긍심과 함께 그에 수반되는 부와 명성에 대한 그림도 함께 보여 주었다.

대충 정리해 보면,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겠다. '멤버의 재능을 알아보는 통찰력'  '목표를 향한 강한 집념' '상황에 맞는 비전의 제시', 나는 여기에 더하여 이들 세 가지 요소의 밑바탕에 '소통과 공감'이라는 단어를 집어넣고자 한다. 감독과 선수들, 리더와 직원들간에는 신뢰관계가 조직의 밑바탕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소통과 공감'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항서, 히딩크, 퍼거슨 감독이 다른 감독들보다 뛰어났던 점이 바로 이 '소통과 공감' 능력이었다는 점은 사실 많은 언론보도에서 쉽게 찾아 볼 수가 있는데, 이 모든 것이 화려한 선수생활을 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지나치게 화려한 실적을 올린 멤버보다는 약간은 부족한 멤버를 선발하여 위대한 세 분의 감독이 가진 후천적 리더십을 배양시키는 것이 조직성장을 위해서는 더 도움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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