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한민국이라는 회사의 인사부서가 드리는 이야기

신경수의 사람人 이야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전하는 인간 신경수의 이야기.
CEO 신경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더십 전문가이다.
마케팅을 공부하고자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우연히 듣게 된 허츠버그의 '동기부여이론'에 매료되어 진로를 HR로 바꾸었다.
10년 동안 일본에 있으면서 조직과 사람에 대한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아인스파트너의 대표로서 한국의 많은 기업체에 조직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다.

제목 삼미슈퍼스타즈와 장명부
등록인 신경수 등록일 2014.11.14

프로야구 출범 이듬해인 1983년 우리나라 야구계에 혜성 같은 존재가 등장했다. 장명부라는 이름의 재일동포 투수다. 인천을 기반으로 한 삼미슈퍼스타즈에서 장명부는 입단 첫해인 83년도에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다승인 30승을 기록하였다. 뿐만 아니라 44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36경기를 완투하였고 427이닝 투구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달성하였다. 그러나 장명부는 다음해인 84년도에 1320패를 기록하였고 그 다음해가 되는 85년도에는 1125패를 기록하며 팀에서 방출되었다.

도대체 83, 84, 85년도에 장명부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는 천당과 지옥을 오고 간 것일까? 프로야구가 출범한 첫해인 1982년 삼미슈퍼스타즈는 6개 구단 중에서 제일 꼴찌를 기록하였다. 구단주는 일본에서 장명부를 데려오면서 ‘야구명가 삼미탄생’이라는 슬로건으로 삼미의 부흥을 선언하였다. 그 중심에는 장명부라는 투수가 있었고 그에게 계약연봉 이외에 추가로 1억이라는 보너스까지 약속하며 장명부의 등판을 종용하게 된다. (참고로 83년 사립대학평균등록금이 50만원, 2014년은 80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지금으로 치면 대략 18억 정도의 인센티브라고나 할까?)

단기성과에 집중한 덕분일까? 삼미는 장명부의 활약에 힘입어 83년도에 3위까지 올라가는 쾌거를 이루었으나 지나치게 장명부에 의존한 나머지 다른 멤버들의 육성은 등한시 하게 된다. 83년도의 무리한 등판으로 인해 장명부는 어깨통증에 시달리게 되고, 다른 멤버들의 육성이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에서 장명부가 하락세로 돌아서자 팀도 같이 연패를 기록하게 된다. 장명부 개인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단기성과에 집착한 구단주의 과욕으로 인해 팀도 개인도 모두 파산한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세계적 수준의 운동선수들은 단순히 지금 플레이하고 있는 현재의 경기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체지방을 확인하고, 식이요법을 실시하며, 건강수칙을 지키고, 전반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모니터링 한다. 흡연, 음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 등의 나쁜 습관은 자제하고, 혈압, 콜레스트롤 수치, 심장 박동 같은 주요 건강 지표를 체크하면서 지금보다는 내일, 내일보다는 모레를 위한 미래의 성과를 위해 오늘을 관리한다. 불행히도 삼미는 그렇지가 못했다.

최근 어느 제약회사에서 일어난 일도 유사한 케이스다. 우리나라의 제약회사는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매출을 약국과 병원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약사, 의사에 대한 로비가 치열해지고 금전적인 리베이트가 갈수록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재무 재표가 오픈 되어 있는 제약회사의 지출항목을 보면 다른 업종에 비해 유독 직원들에 대한 교육개발비 등의 예산이 많이 잡혀있는데, 이는 정말로 직원들의 능력개발을 위해 돈을 썼다기 보다는 의사들을 위한 리베이트 비용을 확보하기 위한 예산항목으로 잡아놓는 경우가 많다.

리베이트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자 정부는 몇 년 전부터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단속을 펼치게 되었다. 이러한 정부정책의 변화는 제약회사의 영업스타일에도 큰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기존의 로비가 주로 선물, 접대 등의 의사 개인에 대한 물질적 로비로 이루어졌다고 하면, 새롭게 변한 패턴은 병원에 건물을 지어준다든지 각종 기자재를 기증한다 던지 하는 등의 병원 자체가 주로 혜택을 받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이런 새로운 스타일의 영업방식에 제약회사는 비용증가로 인한 큰 부담을 느끼게 되었지만 현장의 영업사원들은 내심 반기는 분위기였다. 왜냐하면 의사 개인에 대한 접대는 ‘뇌물이 아닌가?’하는 도덕적인 괴로움을 안겨 주었지만 병원 자체에 대한 로비는 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위해 필요한 물건을 제공한다는 공익적 명분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들 말에 의하면 음지에서 양지로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제3의 영업방식이 등장하면서 시장의 질서가 붕괴되고 말았다. 누군가가 포장지를 바꾸어서 의사 개개인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과거방식으로의 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이번에는 물질적 접대가 아닌 정신적 접대로 모양을 바꾸었다. 예를 들면, 지방의 연수원을 가족휴양지로 리모델링하여 의사들에게 제공한다든지, 이미지개선 아카데미를 이용하여 개인별 코칭프로그램을 운영한다든지, 콘서트 뮤지컬에 초청하거나 직접 배우로 출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든지 등의 힐링프로그램을 시도한 것이다. B2B->B2C로의 급격한 타깃전환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얼마 전 A군에게 일어난 사건이다. 언제나처럼 병원 휴게실에 환자들을 위한 대형 프로젝션을 설치해 주는 A. 영화를 보며 기뻐하는 환자들의 표정을 보며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기쁨이나 보람 같은 것을 느끼며 행복해 한다. 하지만 경쟁사 B군이 의사들에 대한 개인별 맞춤식 이미징 서비스플랜을 들고 오는 바람에 연간 수십억 원에 이르는 항암치료제의 납품이 좌절되고 말았다.

평소 A군이 소속된 제약회사는 의사개개인을 대상으로 한 접대비 사용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이번에는 수주에 실패한 A군에게 문책이 내려왔고 이를 지켜 본 소속 멤버들의 머릿속에는 ‘수단보다는 결과’가 역시 중요하다는 암묵적인 메시지가 침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환자들의 기쁨과 행복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은 조금씩 무너져가기 시작했고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문화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A군이 속해있는 기업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말로는 환자의 행복을 외치면서 행동으로는 B군처럼 하지 못한 A군을 문책한다면 결국 우리회사는 과정보다는 결과가 전부임을 묵시적으로 강조하는 꼴이 되고 만다. 마치 운동선수가 기초체력을 늘릴 시간도 없이 성과에 대한 압력을 받을 때에 약물복용이라는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할 수 밖에 없듯이, 우리 기업도 과정을 무시한 결과중시의 문화가 피어날 때에 조직의 건전성은 무너지고 구성원들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의 문화가 자리잡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엔론사태’이다. 2001년 미국에서는 9.11테러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한번 엄청난 규모의 파산 스캔들이 터졌다. <포춘(Fortune)>지로부터 수 년간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극찬 받았고, 2000년에는 ‘일하기 좋은 100대 회사’로 꼽히면서 승승장구하던 엔론이라는 이름의 회사가 있었다. 석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 사업으로 시작하여 통신, 철강, 심지어 ‘기후 리스크 관리’같은 분야까지 손을 댄 에너지 기업이다. 바로 이 엔론의 자산과 이익의 대부분이 교묘한 회계부정에 의해 탄생한 가짜라는 것이 증명되면서 ‘엔론사태’가 터진 것이다.

세계적인 경영대가 게리하멜Gary Hamel은 엔론을 몰락하게 만든 주요인 중 하나로 올바르지 않은 기준에 따른 목표설정을 꼽았다. 당시 엔론은 매출 목표에 따른 인센티브 시스템을 운영했는데, 문제는 그 시스템이 영업인력이 창출하는 매출에만 기초하고 있었고, 근본적인 사업의 건실함이나 수익성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주를 위해서라면 존재의 목적마저 순식간에 바꾸어 버리는 일부 제약회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게리하멜Gary Hamel교수의 지적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