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한민국이라는 회사의 인사부서가 드리는 이야기

신경수의 사람人 이야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전하는 인간 신경수의 이야기.
CEO 신경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더십 전문가이다.
마케팅을 공부하고자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우연히 듣게 된 허츠버그의 '동기부여이론'에 매료되어 진로를 HR로 바꾸었다.
10년 동안 일본에 있으면서 조직과 사람에 대한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아인스파트너의 대표로서 한국의 많은 기업체에 조직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다.

제목 上部指示라는 용어 사용금지
등록인 신경수 등록일 2015.02.03

국내 유명 의료장비 메이커에서 영업을 담당하던 후배가 1년 전 이맘때 회사를 옮겼다. 비슷한 일을 하는 외국계 기업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오랜 시간 고민을 하다가 결국 예전에 있던 직장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연봉이라는 표현이 더 적당할 듯 하다)에 무릎을 꿇고 회사를 옮긴 것이다. 처음 나를 찾아와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고민을 털어 놓을 때에 나는 이직에 대해 강한 반대를 하였다. 이 친구의 성향을 너무나 잘 아는 지라 외국계 판매법인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구는 국내법인에만 있어야 하고, 누구는 외국계 법인에 있어야만 하는 법칙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 친구는 외국계 법인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캐릭터라고 나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친구가 들려 준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형님, 여기는 정말 희한한 조직이에요. 사장이 뭐라 말하면 그 앞에서는 듣는 척만 하고 실행에 옮길 생각을 안 하네요. 보스의 명령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너무나 자연스러워요~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국내 조직과는 큰 차이가 있을 거야! 조직도 조직이지만 보스 자체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걸!

“예, 맞아요! 사장도 조금 이상해요. 간부들한테 일을 시킬 때면 꼭 ‘본사지시’라는 멘트를 붙이시네요, 자기는 다른 의견이지만 본사에서 하는 지시이니 어쩔 수 없다……. , 이런 느낌이에요.

“너희 팀 멤버들은 어때?

“팀으로 움직인다는 느낌이 없어요~. 각자 알아서들 한다고 해야 하나, 개인별로 보면은 실력들은 좋은 것 같은데, 함께 일하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 없어요. 군중 속의 고독이랄까? 자금 떠나도 누구 하나 잡을 것 같지 않을 뭐 그런 문화인 것 같아요!

 

그 친구는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전형적인 시골 아저씨스타일이다. 그런 사람이 개인플레이가 주류를 이루는 드라이한 조직에서 생활하려니 무척이나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본인의 성향과는 너무나도 다른 조직문화 때문에 한참을 고민하던 그 친구는 결국 이직하고 1년이 채 안된 시점에서 다시 회사를 옮기게 된다. 예전에 다니던 직장으로 못 이기는 척하고 다시 원대 복귀를 한 것이다. 그래도 인간관계가 워낙 좋은 친구라 그런지 예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들하고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취하고 있었고, 그런 노력이 원대 복귀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던 모양이다.

 

위에서 소개한 후배의 사례가 되는 회사는 미국계 회사이다. 하지만 경영환경이 한국적 성향과 많이 닮아 있다는 일본기업들도 상황은 그리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얼마 전, 서울주재 일본주재원들의 모임(Seoul Japan Club)에서 한국으로 새로 부임한 신임 주재원들을 대상으로 ‘한국인 직원들과 생활함에 있어서 주의할 점’이라는 제목으로 세미나를 개최한 적이 있는데, 여러 가지 흥미로운 내용 중에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 ‘업무지시는 본인의 언어로 표현하라!’는 내용이 눈길을 끌었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本社指示’라는 말을 절대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한국인들은 나의 보스가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책임과 권한을 행사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本社指示’라는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은 아무 생각 없이 본사의 지시대로만 움직이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라는 인상을 줄 가능성이 굉장히 크며, 그렇게 될 경우 조직관리가 힘들어진다는 내용이었다. 나 또한 유사한 조사결과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최근 개인적으로 심혈을 기울여 연구하고 테마가 있는데, 바로 조직문화이다. 금년에 들어서 벌써 3차례에 걸쳐서 조사를 진행한 바 있으며 최근 실시한 3차 조사는 ‘기업의 지배구조에 따른 조직문화의 차이’가 주요 내용이었다. 나는 2014년 9월11~30일 잡코리아의 협조를 얻어 그곳에 등록되어 있는 남녀 직장인 806명을 대상으로 조직문화와 관련된 3차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여러 항목 중에서 ‘기업형태에 따라 최고경영자가 조직에 미치는 영향력’를 물어 보는 항목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조사결과가 나왔다.

 

“지금 있는 회사의 최고경영자가 조직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가?”라는 질문에 낮은 쪽으로 답변한 비율은 (공기업 25%, 민간기업 28.5%, 외자기업 34.5%)의 분포로서 외국계 기업이 국내 기업에 비하여 약 10%의 차로 부정적인 답변을 보여주었다. 반대로 영향력이 높은 쪽으로 답변한 비율은 (공기업 23.8%, 민간기업 24.3%, 외자기업 17.2%)의 순으로서 외자기업이 약 8% 정도 낮게 나왔다. 어느 쪽에서도 외자기업은 국내기업과 비교하여 CEO가 미치는 영향력이 적게 나온 것이다.

 

영향력이 낮게 나오는 이유에 대한 질문은 따로 하지 않았으나 그 동안 정성적으로 인터뷰한 외국계기업 임직원에 대한 개별인터뷰에서 대부분의 직원들은 ‘우리 사장은 본사의 눈치만 보는 사람’’우리 사장은 3년 후에 어차피 떠날 사람’’우리 사장은 재무적 성과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써 가면서 불신감을 보여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 중에서도 직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경영진의 멘트로 ‘본사지시이니 나로서는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을 꼽고 있는 것을 보면 위에서 언급한 후배의 불만도 일리가 있는 내용인 것 같다.

 

한 가지 재미있는 현상은 우측의 표에서와 같이 ‘국내기업의 오너가 직접 경영하는 기업 VS 전문경영인이 경영하는 기업’에 있어서 ‘국내기업 VS 외자기업’의 형태와 유사한 답변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였으나 결과에 있어서는 그리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아마도 직원들이 느끼기에 대표이사가 전문경영인인 경우, 그 분의 지시 자체가 원래 오너에게서 기인한 것이라는 생각의 흐름이 바닥에 깔려있기 때문에 ‘전문경영인 VS 오너’의 형태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기업형태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외투기업 경영진의 책임과 권한에 대한 범위는 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책임과 권한을 먼지 속에 묻혀 두는 행태는 비겁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외투기업의 CEO를 하고 있지만 그들은 ‘本社指示’라는 말을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기를 “本社指示라는 용어는 마치 중간관리자가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를 기계적으로 전달하는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의 언어로 전달하지 못하는 중간관리자는 최악이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후배의 일화가 있어 외국기업 사례를 들긴 하였지만, 이러한 사례는 국내기업의 중간관리자들에게도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에 대하여 ‘상부지시’라는 이름으로 ‘영혼이 없는 지시’를 한다면 과연 어느 구성원이 믿고 따르겠는가? SJC(Seoul Japan Club)에서 들었던 성공적인 주재원의 가이드라인 1 1절의 ‘本社指示라는 용어 사용금지’는 오히려 책임전가에 익숙해져 있는 국내기업 관리자들을 위하여 ‘上部指示라는 용어 사용금지’로 바꾸어 쓰고 싶은 언어임에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