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한민국이라는 회사의 인사부서가 드리는 이야기

신경수의 사람人 이야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전하는 인간 신경수의 이야기.
CEO 신경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더십 전문가이다.
마케팅을 공부하고자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우연히 듣게 된 허츠버그의 '동기부여이론'에 매료되어 진로를 HR로 바꾸었다.
10년 동안 일본에 있으면서 조직과 사람에 대한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아인스파트너의 대표로서 한국의 많은 기업체에 조직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다.

제목 시키는 일만 열심히 했을 뿐인데……
등록인 신경수 등록일 2015.02.02

요즘 연예계의 키워드는 90년대 가수들의 출동, 토토가(토요일토요일은 가수다) 이다. 오랫동안 TV화면에서 보지 못했던 90년대의 가수들을 만남으로써 새삼 그 시절을 추억하고, 그 시절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 같다. 그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직원들에게 물어보는 과정에서 97 IMF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었다. 주제를 바꾸어 IMF에 대한 기억을 물어보았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직원은 “금 모으기 운동”, 대학생이었던 직원은 “취업걱정”, 사회초년생이었던 직원은 “희망 없는 미래에 대한 좌절” 등 각자 그 시대를 기억하는 단상이 달라 새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감대가 왜 중요한지를 느끼게 되었다.

 

내친김에 당시의 경제상황을 살펴보았다. 90 9.2%로 시작한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다가(평균 9%) 97 4.7%로 떨어지고 98 -6.9%를 기록하게 된다. <위대한 케츠비>가 있었을 것 같던 96년도가 끝나자, 내실 없는 성장을 해 왔던 우리경제의 거품은 단번에 꺼지고 은행 빚으로 몸집을 늘렸던 대기업들의 부도사태가 줄을 이어 발생하게 된다. 97 1월 한보그룹의 부도를 시작으로 3월 삼미, 4월 진로, 5월 삼립식품과 미도파, 7월 기아자동차, 11월 해태, 12월 한라, 동서증권, 청구, 나산, 극동건설, 미도파, 거평, 대우그룹해체로 이어지는 도미노 현상이 발생한다. 결국 우리는 국제통화기금에 SOS를 치는 처지까지 내몰리게 되고, 드디어…….

 

19971121 10, 이틀 전 임명장을 받은 임창열 신임 경제부총리는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IMF에 유동성 조절자금 지원을 요청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불과 1년 전에 우리도 OECD에 가입하였다며, 드디어 우리도 선진국이 되었다고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는데, 1년도 안되 돈이 없다고 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것이다. IMF는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의 약어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업도산, 대량실업, 노숙자, 자살, 가족해체 등을 연상시키는 공포의 표상이다. 한국인에게는 IMF가 국제기구의 이름이기보다는 사태, 환란, 기를 쓰고 벗어나야 할 그 어떤 것으로 각인이 되어 있는 용어이다.

 

당시의 TV를 켜면 항상 나오는 단골 메뉴가 2가지가 있었다. 오늘은 또 어떤 회사가 부도가 났다라는 이야기와 함께 실직가장으로 인해 발생한 가정파탄 이야기가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가슴을 더욱 먹먹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중에서도 <눈물의 비디오>라는 이름으로 당시 제일은행 명예퇴직 예정자의 인터뷰를 담은 영상물이 하나 있었는데, 그 인터뷰에 등장하는 어느 여직원의 “우리는 그냥 시킨 일만 열심히 했을 뿐인데 왜 우리보고 회사를 나가라고 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라는 눈물 섞인 절규는 온 국민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IMF 구제금융 이후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한 건 1998 6월부터다. 당시 금융감독위원회는 경기 대동 동남 동화 충청은행 등 5개 은행을 시장에서 퇴출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년도에 발생한 대기업들의 잇단 부도로 금융권의 부채가 쌓이면서 은행들의 동반부실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살아남은 은행들도 거의 절반에 가까운 동료를 내 보내야 했다. 금융권에서만 거의 10만 명에 이르는 직장인들이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루 아침에 거리로 내 몰린 것이다.

 

이렇게 강제퇴직을 당한 사람들이 주로 문을 두드린 곳은 제과점, 치킨집 등의 프랜차이즈 업종이다. 처음에는 ‘사장님’ 소리를 들어가며 폼도 내고 했지만 결국 거의 대부분이 망하게 된다. 동아일보가 98년 퇴출된 동화은행 퇴직자 500명을 대상으로 2004년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자영업에 도전했던 사람 중 80%가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시기는 우리나라 프랜차이즈 업종이 본격적으로 도약하게 되는 원년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가장 비약적으로 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국내 치킨업계의 1위 제너시스 BBQ 95년도에 설립된 후, 1999 1000호 점을 돌파하게 되는데 거의 대부분이 98, 99년도에 집중되어 있다. 업계 2위 교촌치킨도 마찬가지다. BBQ와 같은 년도인 95년도에 법인전환을 한 교촌은 97년까지 30개에 불과하던 가맹점의 수가 2000 300, 2003 1천 개를 돌파하게 된다. 제과업계도 마찬가지다. 동네빵집을 초토화시킨 CJ그룹의 뚜레주르가 직영사업을 포기하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가맹점 사업을 개시하게 된 시기도 98 8월부터인 것을 보면 IMF는 우리나라 프랜차이즈 사업을 활성화시킨 1등 공신이라 할 만하다.

 

최근 재계 16위의 대기업인 동부그룹이 심상치가 않다. 그룹의 기간산업인 제철과 건설이 넘어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시간은 2007년 당진에 열연공장을 짓는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냉연을 생산하며 안정적 수익구조를 가져가던 동부는 수직계열화를 통해서 회사를 좀 더 키워보자는 욕심에 당진에 열연을 생산하는 공장을 만들게 된다. 문제는 여기에 들어가는 약 2조원 가량의 돈을 금융권 차입으로 조달하게 된다는 데 있다. 2조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빚을 내서 공장을 지은 것이다. 평균이자 8%로 계산하면 1년 이자만 1600억 원이다.

 

그러나 은행 돈으로 돈을 벌어보겠다던 동부의 꿈은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끝이 났다. 값싼 중국산이 들어오고 세계 철강업계의 환경변화가 동부가 원하는 데로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동부제철로 끝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원금은커녕 이자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제철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계열사들의 자금이 총동원되면서 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97년 은행 돈으로 사업을 벌이다 줄줄이 망한 대기업의 전형적인 부도패턴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친한 고등학교 선배가 맞은편 동부제철에 다니고 있다. 통지 받은 희망퇴직 연령대가 자기보다 10년이나 어린 후배들까지 내려오는 바람에 어떻게 처신해야 하나 하고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 선배는 철판 파느라고 20년 동안 주말도 잊고 회사를 위해 헌신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동부가 은행에서 빚내서 당진에 공장을 지은 시점은 07년이고 과도한 금융권 차입으로 대기업들이 연쇄 부도를 낸 시점은 97년이다. 국가파산이라는 엄청난 학습효과가 불과 10년도 가지 못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무조건 열심히 하자! 고 외쳐서 될 일이 아니다. 경영자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실패의 단초는 위에서 만들고 왜 책임은 직원들이 져야 하는지 그저 가슴이 아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