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한민국이라는 회사의 인사부서가 드리는 이야기

신경수의 사람人 이야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전하는 인간 신경수의 이야기.
CEO 신경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더십 전문가이다.
마케팅을 공부하고자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우연히 듣게 된 허츠버그의 '동기부여이론'에 매료되어 진로를 HR로 바꾸었다.
10년 동안 일본에 있으면서 조직과 사람에 대한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아인스파트너의 대표로서 한국의 많은 기업체에 조직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다.

제목 비서실 사람들 Part 2 <사람보는 안목>
등록인 신경수 등록일 2015.01.19

행동경제학을 창안하여 노벨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en 교수는 그의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인간의 주관적인 판단은 기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전제하에 출발해야 한다” 라고 말했으며, 마케팅의 대가 필립 코틀러Philip Kotler 교수는 그의 저서 《마켓 3.0》에서 “경영자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디시전 메이킹Decision Making 능력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일까? CEO는 일과 중의 거의 대부분을 주변인들의 의견을 구하는 데 할애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CEO의 잘못된 판단은 조직전체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의사결정을 함에 있어서 신중하게 접근하기 위함이다. 그 대상이 꼭 전문가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쉽게 대화가 이루어지는 그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가장 많이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비서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가는 것이다. 마침 가까운 거리에 있는 비서가 충분한 식견을 가지고 있으면 더 깊은 신임을 얻게 되는 것이고, 기대에 못 미치면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비서는 승진에 있어서도 확실히 유리한 위치에 있다.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오너의 의중을 잘 알고 있으며, 정보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번 칼럼 <무간지옥無間地獄 갇힌 사람들>에서 잠깐 소개했지만, 오래 전에 나는 지금의 커리어와는 많이 차이가 나는 엉뚱한 분야에서 잠깐 일한 경험이 있다. 사장직속의 기획실에서 잠시 일한 경험이 있는데, 말이 기획실이지 비서실이나 다를 바 없는 부서였다. 전체 직원의 수는 대략 150명 정도로, 임원이 5, 부장직급의 간부가 20명 정도되는 아담한 사이즈의 중소기업이었다.

 

당시 나의 상사였던 기획실장은 직급은 차장이었지만, 그 분이 가지고 있던 존재감이나 영향력은 거의 부사장과 마찬가지였다. 우리 팀은 기획실장과 나, 그리고 사무보조의 여직원과 사장의 운전기사 이렇게 4명이 한 세트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일하는 공간은 사장실로 들어가는 입구 바로 앞에 있었고, 그래서 사장실로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우리의 영토를 거치지 않으면 안되었다. 결재서류 또한 무조건 기획실장을 거쳐 사장에게 들어가는 구조였기 때문에 기획실에 있는 사람들은 회사의 모든 흐름을 미세한 부분까지 파악할 수가 있었다.

 

사장과 독대하기를 원하는 사람들, 사장으로부터 왜 호출을 받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 사장의 친구와 가족들…… 조그만 공간의 기획실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제일 먼저 맞이하는 사람은 이 영토의 주인장인 기획실장, 아니 엄밀히 말하면 비서실장이었다. 이런 저런 일로 비서실장은 사장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고, 그런 연유로 그는 사장과 외부인을 이어주는 다리였을 뿐만 아니라 사장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보이지 않는 손이기도 했다.

 

특히 간부들과의 정규회의가 끝나면 사장은 항상 비서실장을 자기 방으로 불러서 방금 전에 논의하였던 안건에 대하여 개인적인 의견을 구했다. 비서실장은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사장은 그 의견을 그대로 반영하여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한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그 둘은 업무이야기가 끝나면 다음은 반드시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이어갔다는 점이다. “박00 이사의 조직관리능력은 어느 정도인지, 00 부장은 여전히 술버릇이 안 좋은지” 등과 같은 간부들의 업무능력 및 개인 사생활과 관련하여 사장은 항상 비서실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렇게 운영되는 회사에 대한 불안감은 높아만 갔다. 사장에게 있어서 비서실장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가장 많은 대화를 하는 것처럼 나 또한 비서실장의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에 그 분의 능력과 사람됨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리를 중요시 여기는 과묵한 성격에 사람됨은 그리 나쁘지 않은 분이었으나 능력은 200명이라는 조직을 끌고 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어린 내 생각에도 Max 20~30명의 조그만 조직을 관장하는 그런 능력밖에 없어 보였는데도 이상하게 사장은 그 분의 의견 데로 회사를 운영하였다.

 

결국 그 회사는 망했다. 그 회사가 망한 이유에 대해 외부인들은 글로벌경제의 침체에 따른 내수경제의 악화로 어쩔 수 없이 망했다고 말을 하지만 그 회사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식견이 없는 비서실장을 너무 신임한 사장의 ‘사람 보는 능력의 부재’를 제일 중요한 이유로 꼽는다.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문고리 3인방의 권력암투이야기’를 단순히 코미디라고 웃고 지나갈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모두는 주식회사 대한민국에 속해 있는 직장인들이기 때문이다.

 

최고경영자의 의사결정능력은 기업경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코틀러Kotler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코틀러Kotler 교수가 말한 디시전 메이킹Decision Making 능력보다 더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능력이 혹시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 다면, 나는 주저 없이 ‘사람보는 능력’이라고 말할 것이다. 어지간한 내공이 붙지 않는 한, 얻기 힘든 가장 어려운 테스크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으며 또한 선택 받은 경영자만이 가질 수 있는 축복이기 때문이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최고경영자에게 그런 능력이 있나? 하는 의심은 절대 하고 싶지 않다. 해 봐야 소용도 없고, 무엇보다 지금은 100% 믿음을 가지고 따라가야 하는 지점에 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