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한민국이라는 회사의 인사부서가 드리는 이야기

신경수의 사람人 이야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전하는 인간 신경수의 이야기.
CEO 신경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더십 전문가이다.
마케팅을 공부하고자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우연히 듣게 된 허츠버그의 '동기부여이론'에 매료되어 진로를 HR로 바꾸었다.
10년 동안 일본에 있으면서 조직과 사람에 대한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아인스파트너의 대표로서 한국의 많은 기업체에 조직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다.

제목 미워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등록인 신경수 등록일 2015.03.05

나는 일본에 참 오랫동안 살았다. 그곳에서 학교도 다니고 직장도 다니고 그리고 지금은 일본의 어느 대기업의 한국법인 대표를 맡고 있다. 하지만 어느 모임에 가든지 간에 가급적 일본에 대한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일본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마음이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일본과 관련된 이야기는 거의 대부분이 일본을 비난하는 내용들이고 간혹 원색적인 욕도 들어가기 때문이다. 가끔은 나에게 일본을 비난하는 멘트를 요청할까 봐 마음이 불안해 지기까지 할 때도 있다.

 

몇 일전, 이렇게 노심초사勞心焦思하며 걱정했던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밖에서가 아닌 안에서 일어났다. 새 학년이 시작되면 아이들은 자기소개를 위한 PPT자료를 만들어 가게 되어 있는데 이곳에 부모님의 직업과 관련해서도 한 줄 넣게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아빠가 하는 일과 관련하여 질문을 하던 도중에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는 둘째 아이 수연이가 갑자기 나에게 이런 말을 던지는 것이었다.

아빠! 아빠는 왜 일본회사에서 일해?”

? 수연아, 일본회사가 어때서?”

자기들 맘대로 우리나라 들어와서 나쁜 짓 다하고, 독도도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맨날 거짓말만 하고, 반성도 안하고, 그런 나쁜 사람들하고 꼭 같이 일해야 돼?

 

참 난감한 순간이었다. 수연이가 하는 말이 틀린 말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대로 침묵을 지키게 되면 수연이 머릿속의 일본은 무조건 나쁜 나라로 인식될 테고……. 뭔가 반론을 제시하기는 해야겠는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 하고 있는 나에게 집사람이 日本國 東京이라는 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와 사진이 담긴 조그만 상자 하나를 건네 주었다. 많은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언제 보아도 뭉클한 상자 속 이야기를 이제는 우리 수연이에게 들려줄 때가 온 것 같다.

 

1991년 아무 연고도 없는 일본 도쿄에 도착한 나는 도착한 다음 날 임시로 머물렀던 하숙집에서 가지고 있던 돈을 전부 도둑맞게 된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하숙집이었는데, 먼저 와서 생활하고 있던 한국인 불법체류자에게 보기 좋게 먹이 감이 되고 만 것이다. 나중에 이 분을 만나서 사죄는 받았지만, 돈은 돌려 받지 못했다. 그 분의 사연이 너무 딱했기 때문이다.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쥐꼬리만한 선생님 월급으로 형들 누나들 대학까지 보내느라 고생하신 부모님에게 더 이상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유학할 수 있게 끔 도와주신 것만 해도 그저 감사하게 생각하고, 나머지는 내 스스로 해결해 나가리라 결심하며 고향을 떠나온 터라 집에는 말도 못하고, 미리 건너와 있던 친구에게 생활비를 좀 빌려볼까 하는 마음에 그 친구의 동네를 찾게 되었다.

 

친구네 집 근처 역에서 내려서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던 나에게 아르바이트 구함이라는 글자가 대문짝만하게 큰 글씨로 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 전단지가 붙여져 있던 가게를 올려다 본 나는 급 실망을 하게 된다. 寿司正(스시마사)라는 이름의 일본전통 초밥 집이었던 것이다. 일본어가 초보수준이었던 나는 잠시 주춤하기는 하였지만 일단 부딪혀 보기로 하고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들려오는, 그것도 60이 넘은 아주머니의 大阪(오사까)사투리가 섞인 일본어는 마치 외계인의 언어처럼 들렸다. 말씀하시는 내용의 10%도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무슨 말인지 몰라 멀뚱멀뚱 처다만 보고 있는 나에게 주인 아주머니께서 합격을 주신 것이다. 더 좋았던 건, 당시 사원으로 일하고 있던 일본인 직원이 5명 있었는데 그들하고 같이 기숙사 생활을 해도 좋다고 말씀을 하신 것이다. 비용절감도 좋았지만, 언어를 빨리 깨우칠 수가 있겠다는 기대감에 더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 일은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사건임에 틀림이 없었다. 우리나라의 고급 한정식 집에서 언어도 통하지 않는 동남아 학생을 고용한 꼴인 것이다. 시간이 한 참 흐른 후에 왜 그렇게 호의를 베풀어 주셨는지 아주머니께 여쭈어 보았다. “신君하고 이야기하면서 5년 전 죽은 아들이 생각이 나지 뭐야~ 웃는 모습이 너무 닮았더라고~ 막내라고 그랬지? 우리 막내도 신君 다니는 학교에 다니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거든^^;”

 

그때부터 3대째 내려오는 일본 전통 초밥 집에서의 아르바이트 생활이 시작이 되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에서 잠깐 공부하다가 가게에 가는 패턴이었다. 아주머니는 저녁도 꼬박꼬박 챙겨주셨고 기말고사 시즌에는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편의도 봐 주셨다. 주인아저씨와 아주머니의 사랑은 나에게는 큰 행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불행의 전조이기도 하였다. 같이 일하던 일본인 직원들에게 있어서 나는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가지 대형 사건이 발생했다. 고객 중에는 기업고객도 꽤 많았는데, 기업고객의 경우 대개는 월말에 일시불로 결재를 하였다. 매월 마지막 날이 되면 오토바이를 타고 수금을 하는 일은 오랫동안 근무했던 베테랑 사원의 중요한 일 중에 하나였다. 액수가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들어 간지 1년쯤 되었을 무렵, 수금업무가 갑자기 나에게 주어졌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아주머니가 그 일을 나에게 맡긴 것이다. 그리고 그날 나는 약 5백만 원 정도가 들어있던 수금가방을 잃어버리게 된다.

 

분실신고를 하고 있는 아주머니 앞에서 파출소 순경이 이렇게 말했다. “저 한국인 학생이 빼돌리고 잃어버렸다고 거짓말하는 건 아닐까요?”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저 아이는 절대 그런 거짓말을 할 아이가 아닙니다. 그건 제가 100% 보장할 테니 그런 의심은 절대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아주머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한 때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국가에서 온 가난한 유학생이라고 멸시를 당하고 있나 하는 서러움에 눈물이 나왔고, 이렇게 나를 옹호해 주는 아주머니에 대한 고마운 마음에 또 눈물이 나왔다.

 

하늘이 도왔는지, 정확히 3일이 경과한 후에 가방은 주인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가방을 잃어버리게 된 경위가 몸이 불편한 어느 지체장애자를 돕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한 때 나를 의심했던 일본인 직원들은 진심 어린 마음을 담아 나에게 사과를 했다. 하지만 내가 가장 기뻤던 건, 나를 믿어주었던 아주머니를 실망시키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파출소 순경 앞에서 당당히 나를 옹호해 주던 그 때 이후로 나는 그 분을 아주머니가 아닌 어머니로 생각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 사건은 정의의 잣대는 항상 정직한 사람 편에 있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새기게 만든 내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었다. 또한 그 사건은 지역신문에도 조그마케 보도가 되었고, 한 동안 나는 동내 유명인사로 원치 않은 유명세를 타는 행운도 맛보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도 바쁜 주말에는 항상 가게로 나가서 그분을 도와드렸다. 그 분의 이름은 伊藤千代(이또치요), 일본에 계신 나의 어머니이시다.

 

이런 지극히 개인적인 일화를 쓰는 이유는 일본을 이해하고 불편한 한일관계를 개선해 보자고 말하고 싶어서가 결코 아니다. 불편한 한일관계를 어떻게 푸느냐의 문제는 나보다 더 똑똑하고 경험이 많은 전문가들도 많거니와 거의 대부분은 일본 쪽에서 풀어 주어야 할 과제이기 때문에 여기서 거론해 봐야 소용도 없다.

 

다만, 훗날 우리 수연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이 글을 읽으면서 아빠의 젊은 날을 이해하고, 또한 그 시절 아빠와 함께한 마음이 따뜻한 일본인들도 참 많았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에서 빛 바랜 사진 속 이야기를 꺼내 본 것이다. 독자 여러분들의 깊은 이해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