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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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인터뷰

제목 남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삶의 흔적을 남길 것이다 - 안철수 KAIST 석좌교수
등록인 관리자 등록일 2018.04.17

* 본 내용은 ()아인스파트너의 신경수 대표이사가 우리사회를 대표할 만한 각계각층의 명사들을 방문하여 지금의 모습이 있기까지의 과정을 청취하여 대중에게 소개함으로써 이 시대를 살아감에 있어서 조금이나마 삶의 지혜를 얻는 데 힌트를 주고자 시행하고 있는 기획대담 프로그램입니다.  


 

 

남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삶의 흔적을 남길 것이다 





 

  안철수 KAIST 석좌교수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나는 미리 남보다 시간을 두세 곱절 더 투자할 각오를 한다. 그것이야말로 평범한 두뇌를 지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안철수의 저서 『영혼이 있는 승부』중에서

한국 국민들에게 가장 신뢰받는 리더,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비지니스위크 선정 '아시아의 별 25인' 세계경제포럼이 뽑은
'차세대 아시아의 리더 18인'. 안철수 KAIST 석좌교수에 대한 평가.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안철수연구소를
창업 10년째인 2005년 신화창조를 이룬 벤처기업 반열에 우뚝 세웠다. 그리고 그 신화창조의 주역인 창업자인 안철수는 조용히 퇴장했다. 최고의 순간에 아름다운 퇴장을 선택한 것이다. 2008년 5월, 3년간의 유학을 마친 그가 CEO가 아닌 KAIST의 석좌교수로 돌아왔다. 그를 만나 최근의 근황과 함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신 교수: 최근 근황에 대해 말해 달라


 교수: 현재 공식적으로 맡고 있는 일만 20개가 넘는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무래도 카이스트 교수 일이다.
내가 석좌교수라고 해서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데, 많은 대학들이 석좌교수를 사회 저명인사에게 1년에 한두번 특강하면 그냥 주는 비상임의 경우로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나 같은 경우는 카이스트 풀 타임 정교수이고, 거기에 추가적으로 부여한 직위가 석좌교수인 것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시간을 제일 많이 쓰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안철수연구소 이사회의 의장 일과 올해부터 맡은 포스코 의사회의 의장 일이 꽤 많다. 그리고 안 연구소에서 새롭게 스핀오프 한 가능성 많은 회사가 노리타운 스튜디오가 있는데, 의사회의 의장 일을 하고 있다.
노리타운 스튜디오는 최근 안철수연구소의 사내벤처에서 분사한 소셜게임 기업이다. 소셜게임 분야는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SNS 플랫폼이 등장하며 매년 큰 폭의 성장이 예상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청년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또 대통령 자문 위원회를 두 개를 하고 있다. 미래기획위원회의 위원과 IT분야에 투자쪽 의사를 결정하는 IT전략 기획위원회이다. 황창규 삼성전자
사장이 단장으로 있는 지식경제 R&D전략기획단의 위원이기도 하다.
직함이 많은 만큼 외부 활동이 워낙 많다 보니 사실 거의 일정이 꽉 차 있다. 거기다 외부 강연요청을 1년에 2,500여건을 받을 정도로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 강연은 1년에 평균 50~100건을 하고 있다


신 교수: KAIST가 대전에 있는데,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한가

안 교수: 그래서 한꺼번에 몰아서 하고 있다. 어떤 때는 외부강연을 아예 3개를 모아서 하기도 한다. 지방강연이 많다 보니 대전이라는 지리적 위치도 그리 나쁘지 않다


 

신 교수: 활동을 크게 나눠보면 학교활동과 사회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두 가지 활동에서 우선순위가 있나

안 교수: 학생교육이 나에게 가장 중요하다. 보람을 느끼는 것이 있다면, 지금 5학기째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첫 학기 때 가르쳤던 학생들이 창업을 한 점이다. 학기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며, 이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큰 보람이다. 사실 외부 특강은 한 두어 시간 잠깐 하고 끝나니까 그렇게 영향을 많이 끼치지는 못한다. 그런데 학생들과 한 학기 내내 외부강사 도움 없이 나 혼자서 휴강도 안 하고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학생들도 처음에 가졌던 유명인에 대한 환상도 없어지고 열심히 배우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의 생각을 좋은 쪽으로 바꿔줄 수 있다는 것. 특히 나의 가르침으로 인해 이들의 생각과 행동이 바뀌게 됨으로써 결국 이들의 운명을 바꾸게 된다는 점에 사명감을 가진다.
그 다음으로 사회활동을 보면,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선은 기업쪽 일이 많다. 안철수연구소 일과 포스코에서 중요한 의사결정들, 스핀오프한 회사들 등등…. 기업과 관련된 일들이 내가 좀 더 잘 할 수 있고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 염두를 두고 있다.
그 다음 또 하나의 중요한 사회활동 중에 가장 중요한 게 3가지 있다. 이미 두 개는 말했고, 3번째는 박형철씨라고 시보루사 필명으로 알려진 사람과 둘이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일반대상의 공개강좌를 한다. 일종의 대담형식의 강좌이다. 작년에 처음 이화여대에서 시작해서 올해는 제주도 제주대학, 인천, 수원, 부산 지금 또 이제 남아있는 곳이 대구 이렇게 계속 돌고 있다


신 교수: 주로 사회활동은 어떻게 보면 사회적으로 약자 쪽에 속해 있는 사람들에게 지원하고 도와주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한 활동들하고 포스코의 의장 일들과 언밸러스 한 것은 없나.  

안 교수: 언밸런스 하지는 않다. 내가 안철수연구소 CEO를 그만둔 이유가 한 회사만을 잘되게 하는 것보다는 이때까지 내가 가졌던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사회 전반적인 성공확률을 높이는데 기여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포스코와 같은 대기업부터 작게는 일반 개인 ‘소셜앙트로플로어’를 꿈꾸는 개인에 이르기까지 내가 도와줘서 조금이라도 좋은 쪽으로 변화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내게 의미 있는 일이다.


신 교수: 지금까지 총 15권의 책을 세상에 내 놓았다. 가장 애착이 가는 저서는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안 교수: 『영혼이 있는 승부』라는 책이다. 2001년에 출간된 이 책은 조금 있으면 만 10년이 되는데도 아직도 많이 팔리고 있다. 거의 100쇄 가까이 찍었을 것이다. 내가 가장 원했던 것 중에 하나가 우리나라도 10년 이상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러한 책을 한번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그렇게 오래된 책들 중에서 영향력을 끼친 외국에는 많은데 한국에서는 10년 이상이 된 책이 정말로 드물다. 그것이 작가로서의 하나의 꿈이었는데, 이제 내년이면 이뤄지게 된다.  


신 교수: 혹시 지금도 쓰고 있는 책이 있나.  

안 교수: CEO였을 때 책을 많이 썼다. 오히려 교수가 되니까 책을 쓸 시간이 별로 없다(웃음). 그 이유는 교수로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연구만 하면 쓰겠는데, 지금은 옛날보다 사회활동이 워낙 많다. CEO를 할 때는 회사경영하고 관련된 업무만 했는데 지금은 활동범위가 너무 넓어서 오히려 내 시간이 없는 게 탈이다. 정말 책을 쓸 시간이 없어 고민이다. 물론 지금 쓰고 있는 것이 있는데 빨리 마무리 짓고 싶다.


신 교수: 질문의 내용을 바꿔서 가치관과 철학에 관한 이야기로 묻고 싶다. 인성형성에 영향을 끼친 주변인이나 가족들 이야기를 들려 달라

안 교수: 책인 것 같다. 나는 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꼭 위인들이 아니더라도 일반 소설 주인공조차도 내게 많은 영향을 줬다. 나는 책을 읽는 방식이 다르다. 소설을 읽어도 그 줄거리가 재미있어서 읽는 게 아니라, 주인공이 그 상황에서 왜 저렇게 생각하고 왜 저렇게 의사결정을 할까 그런 게 참 궁금했다. 책에는 신라시대도 있고 로마시대도 있고 미래의 시대도 있다. 그 시대별로 책의 주인공이 있는데, 참 이해하기 힘든 실수를 해서 나락으로 추락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왜 저 사람들이 저때 저런 생각을 하는가에 대해 이해를 하려고 노력했다. 책을 보면서 사람이 처한 환경을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이해했던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내가 회사를 경영하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가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친구관계가 많지는 않았지만, 책을 통해서나마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사람을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포옹력 또한 넓어지게 되었다. 내가 세상에 이해 못하는 사람은 없을 정도였다.(웃음


신 교수: 어떤 사물의 구조라던지 메커니즘이란 것이 자연스럽게 눈에 보인다는 것인가

안 교수메커니즘이라기보다는 사람의 심리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 또는 그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 그 사람을 이해하고 그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많이 생긴 것 같다. 우리가 상대방과 일을 하다보면, 저 사람은 도대체가 이해가 안 간다 라는 상황이 많다.
그런데 나는 이해할 수 있다. 그 사람은 그럴 수 있겠지. 그 사람 수준에서 또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없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본인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못하는 일은 push 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 사람에게 맞는 일을 줘야 한다. 이런 긍정적인 행동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


신 교수: 본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 있다면

안 교수: 셀 수 없이 많다. 먼저 부모님이 계시고, 책에서 본 ‘앤디 그로브’ ‘빌 게이츠’ 등도 한 부분씩은 배울 점이 있다. 나는 전임적인 한 사람만을 따르거나 좋아하지는 않다. 수많은 사람들을 보다 보면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내게 롤모델이나 멘토는 소수가 아닌 다수이다.

 

신 교수: 부모님은 어떠한 분이셨나

안 교수: 아버지는 지금 80세가 넘으셨다. 현재도 부산의 달동네 같은 곳에서 환자를 열심히 보고 계신다. 아버지는 책을 보는 것을 좋아하셨다. 진료를 안 하실 때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셨다. 지금도 눈이 침침하신데 일제시대 때 학교를 다닌 세대라 일본소설도 읽고 계신다.
환자들이 못 사는 동네에 살다 보니 진료비를 낼 형편이 못 되었다. 아버지는 환자의 형편에 따라 진료비를 받으셨다. 한번은 집 앞에서 신문배달 소년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치료한 다음에 돈을 내려고 하니까 아버지는 “야! 네가 무슨 돈이 있어” 하시면서 가라고 쫓기도 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한 86년도에 아버지는 당시 50대 중반이었는데 불구하고 전문의 시험을 봐서 합격했다. 하지만 나한테는 별로 어색하지 않았다. 나도 40대 중반에 시험을 봐서 학교에 간 것이 이상하지 않듯이 말이다. 사실 한국에서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자리잡은 40대 중반이 미국을 간다면 연구원이나 교환교수 자격으로 가는데 나는 시험을 보고 학생으로 갔다. 그래서인지 더 많이 배우고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에게서는 사람들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과 교만하거나 자만하지 않는 부분을 배웠다. 교만이나 자랑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한 번은 내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간 것에 대해 주변 친구분들이 놀라셨다고 한다.
왜냐하면 평소 자랑을 하던 자제분들은 훨씬 안 좋은 대학에 들어 갔으니 말이다. 어머니는 내게 자랑은 참 부질없는 것이고 교만이란 게 사람을 얼마나 실패의 나락으로 만들 수 있는지 가르쳐 주셨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이들에게 있어 최고의 스승은 부모”라는 게 실감이 난다. 내가 MBC “무릎 팍 도사” 에서 말한 것처럼 결국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게 하려면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신 교수: 그 말을 하시니까 갑자기 생각이 난다. 방송에 출연한 특별한 동기는 있었나.

 교수: 하하. 사실은 동기보다는 1년 전부터 나를 자꾸 쫓아 다니고 괴롭혀서 그냥 한번 출연해서 고생하면 다시 안 괴롭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출연했다. 또 내가 카이스트에 교수로 가게 된 이유를 통해 젊은 사람들에게 도전정신을 심어주고 싶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22년 동안 언론에 끊임없이 노출된 사람이었다. 그 흐름을 보면 효과적인 매체가 자꾸 달라지게 되더라. 22년 전만해도 신문이었는데 그 중에 내게 가장 적합한 매체가 TV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었다. 그래서 '성공시대'에 나간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요즘은 젊은 사람들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알릴 수 있는 것이 대중성이 있는 연예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MBC “무릎 팍 도사”에 출연했다



신 교수: 인생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있다면 언제였고, 무엇 떄문이었나.  

안 교수: 작지만 중요한 인생의 터닝포인트 중에 하나가 의대 졸업할 때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의로 간 것이 아니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기초의학 연구로 갔다. 그것이 첫 번째 나름대로 중요한 결정이었다. 둘째는 모두 다 알다시피 의대 교수를 하지 않고 안철수연구소를 창업한 결정이었다. 셋째는 내가 창업한 회사를 나오기로 결심한 것이다. 회사를 만들고 직원들에게 주식을 나눠 준 것 말고는 거의 팔아본 적이 없어서 지금도 나를 물리적으로 주주총회에서 쫓아 낼 수가 없는데도 나 스스로 나온 것이다.
그 다음 또 중요한 결정이라고 하면, 나름대로 준비해서 경영학 MBA 학생으로 간 것이다. 회사 경영을 10년 하고 나면 쉬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나 다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배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귀국한 후에는 다시 벤처캐피털리스트가 될 수도 있었고 창업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카이스트 교수를 택했다.
그것이 굉장히 중요한 결정 중에 하나였다



신 교수: 그러한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마다 100% 혼자서 결정하나

안 교수: 결국에 결정은 자기 몫이다. 누가 대신 결정 해줄 수는 없다. 요즘 청년들은 멘토가 대신 결정을 내려 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참 강하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하고 나중에는 굉장히 불행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다. 자기가 치열하게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멘토를 원망하게 되고 본인 또한 후회가 심해진다.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기가 오랜 고민을 해야 자기의 마음이 정리가 되고 실패도 성공도 배울 수 있다. 결국은 자기가 결정을 해야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신 교수: 조직의 최고 책임자로서 가져야 할 능력이나 중요시 여겨야 할 것들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안 교수: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는 개인의 이익과 조직의 이익이 상충될 때, 개인의 이익을 버리고 조직의 이익을 택하는 기본적인 마음이 조직리더에 있어 가장 필수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정말 끊임없이 고민해서 자기가 정말로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원하고 나한테 무엇이 중요한지를 잘 알아야 한다. 한 마디로 자기 고유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자기를 속이지 않고 의사결정을 할 때 분명하고 원칙이 생긴다. 원칙이 있으면 일관성이 저절로 생긴다. 옛날에 했던 결정과 맞춰서 미리 결정을 하면 일관성이 생기지 않는다. 자기 원칙을 가지고 앞만 보고 걸어 간다면 일관성이 생긴다. 그리고 자기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 것 이외에 꼭 필요한 것이 전문성이 근거하는 비전이 필요하다. 리더는 이러한 철학과 비전, 실행능력을 갖춰야 한다.  


신 교수: 마지막으로의 꿈이나 행보에 대해 말해 달라

안 교수: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나라는 존재가 없었을 수도 있고 있었을 수도 있다. 결국 죽고 나면 내가 없어지는 결과는 똑같다. 그런데 내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와 지금 존재해서 살다가 죽었을 때, 그 중간에 차이가 났으면 좋겠다. 그래야 그냥 살다간 인생이 아니지 않겠나.
흔히 삶의 흔적이라고 하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던지, 아니면 책으로 남긴다든지 그 사람의 살았다는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그런 것이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 내 인생을 관통하는 시점에서 의사를 그만두었고 또 내가 창업한 회사를 스스로 그만두었고, 카이스트 교수가 되었다. 삶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질문에 더 좋은 선택이 있으면 그것을 선택해왔다. 지금까지 앞으로도 그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글 신경수 _ 아인스파트너 대표이사/경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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