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한민국이라는 회사의 인사부서가 드리는 이야기



스페셜 인터뷰

제목 행복하고 싶다면 세라토닌하라-이시형 박사
등록인 관리자 등록일 2018.04.17

* 본 내용은 ()아인스파트너의 신경수 대표이사가 우리사회를 대표할 만한 각계각층의 명사들을 방문하여 지금의 모습이 있기까지의 과정을 청취하여 대중에게 소개함으로써 이 시대를 살아감에 있어서 조금이나마 삶의 지혜를 얻는 데 힌트를 주고자 시행하고 있는 기획대담 프로그램입니다.  

 

 

행복하고 싶다면 세라토닌하라 



 

  이시형 박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신과 의사이자 베스트셀러 저자이며 국민건강, 자기개발, 자녀교육, 공부법 등 다양한 주제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높은 명강사인 이시형 박사. 그는 수십 년간 연구, 저술, 강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열정적인 활동을 펼쳐온 것으로 유명하다.
1980년대 이후 5년 주기로 ‘배짱’ ‘여성·청소년’ ‘세계화’ ‘건강’ 등의 화두를 던져 대한민국 핫이슈로 만들어왔다.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세로토닌하라!』, 『배짱으로 삽시다』, 『우뇌가 희망이다』 등 숱한 베스트셀러를 저술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대표 파워시니어’ 이시형 박사의 도전은 계속되어 2007년 75세의 나이에 자연치유센터 힐리언스 선마을을, 2009년에는 세로토닌문화원을 건립,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건강한 생활습관과 생활환경을 전파하는 전진기지로 삼겠다”는 당당한 포부를 밝혔다. 나이에 대한 기존 상식을 뛰어넘는 이 같은 활동에 대해 이시형 박사는 “이것이 바로 평생 공부하고 도전하는 새로운 라이프사이클이며, 그 결과 파워시니어로서 개인의 삶과 사회생활을 성공적으로 영위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신 교수: 평소 세라토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세라토닌은 무엇인가


이 박사: 세라토닌은 한마디로 말하면 생활습관을 개선함으로써, 병을 예방 치유하자라는 것이다. 생활습관에 의한 병에는 당뇨병 고혈압 등 무서운 병들이 있다. 사람이 죽을 때보면, 80%-90% 이상이 이병에 걸려서 죽게 된다. 그런 병을 약을 쓰지 않고 자연적인 방법으로 예방 치유하자는 것이 취지이다.
생활습관은 크게는 50%가 생활습관이고, 그 다음이 25%, 1/4은 생활환경이다. 내가 세라토닌 호흡을 만든 것은 서울공기의 오염은 어쩔 수 없지만, 우리가 사는 집은 치유적인 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새집 증후군도 말이 많지만, 어떻게 하면 정말 치유적인 치료, 밖에서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휴우하고 살았다고 생각하는 치유적인 집을 짓겠다는 세라토닌 프로세스를 만들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세라토닌인가. 우리의 마음이 밝고 긍정적이어야 몸에 밝고 긍정적인 반응이 나타난다. 그래야 세포 하나하나의 모든 것이 나의 명령에 따라서 움직인다. 뇌는 항상 밝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 마음이 바로 세라토닌인 것이다. 이것은 본능을 관장하는 호르몬으로써 모든 신경, 즉 뇌신경 기능을 통괄하고 교류하게 하는 일종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라고 생각하면 가장 알기가 쉽다.
세라토닌은 단독으로도 기능을 하지만, 대개 모든 호르몬을 통괄, 조절한다. 가령, 우리가 운전을 할 때 과속을 못하게 하고, 교통 질서를 잘 지키게 등의 조절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난폭운전를 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조절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하겠다.
모든 생체는 항상성의 법칙을 가지고 있다. 항상 똑같이…. 몸이 비뚤어져 있다고 하면, 똑바로 바로 잡으려고 하는 본능이 작용한다. 기분이 우울하면 그것을 기분 좋게 하는 운동을 한다거나, 술을 마시는 행동 등이 항상성의 법칙이며, 그것을 하게 하는 호르몬이 세라토닌이다. 이렇듯 세라토닌은 바로 가장 중요한 기능 중에 하나가 조절기능이다. 식욕조절을 하는 것, 공격성, 폭력성, 중독, 우울, 자살 등 이런 것들이 전부 세라토닌이 부족하면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정신적인 문제로 가장 심각한 게 우울, 자살, 공격성, 중독성이다. 이것이 가장 심각한 사회 정신병이다. 이러한 현상은 세라토닌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아울러 세라토닌은 적정수준에 분비가 되어야 기억력이 좋아지고 창조적이 된다. 그래서 수도원이나 절 등이 산속에 있는 이유가 자연은 세라토닌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곳에 가면 정신이 맑아지고 영혼까지도 맑아지고, 공부가 잘되는 것이 산에 가는 이유이다.
세 번째,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세라토닌은 바로 행복호르몬이다. 인간이 본능적인 행위를 할 때는 참 즐겁고 행복하고 만족한다. 만약 그것이 귀찮고 싫었으면 인류는 멸망했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본능적인 행위를 할 때 가장 즐겁고 행복한 것이다.

만약 우리가 본능적인 욕구인 식욕이 만족이 되지만, 씻지 않는다면 세라토닌이 분비가 안 된다. 이 세라토닌이 분비가 안 되면 식욕조절이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조절 호르몬이다. 모든지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넘치면 내리고 모자라면 채워주고, 그러나 그것을 못하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
모든 본능적인 행위는 즐겁다. 만약에 우리가 걷는 것이 싫고 귀찮았다면 우리 인류는 멸종을 했을 것이다. 원래 걷는 것은 즐거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세라토닌 워킹을 통해 걷는 게 즐겁다는 것을 그리고 걷는 게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을, 여러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아침 새벽에 공기 좋은 시골길에 걷으면 행복하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가 차라는 것을 타게 되면서 우리 인간이 게을러졌다. 쉼 호흡도 마찬가지이다. 먹는 것, 걷는 것 등 그 다음에는 호흡이다. 보통 우리가 평상시에 절로 하는 호흡은 세라토닌과 관계없고, 반드시 쉼 호흡을 한다. 우리가 비탈길을 걸을 때 숨이 가쁘면, 그때의 호흡은 세라토닌이 분비되는 것이다. 이렇듯 세라토닌이 분비되면, 주의집중이 잘되고, 기억력이 좋아지고, 창조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


신 교수: 국민들에게 좋은 습관을 가지게 하는 취지가 담겨져 있는 것 같다. 국민문화 운동에는 재원이 필요한데, 재원조달은 어떻게 하고 있나

이 박사: 고맙게도, 내 뜻에 찬성하는 분들이 돈을 모아서 지원을 많이 해 주고 있다. 우리가 사단법인을 정식으로 등록을 하면 회원들을 많이 모집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회원을 받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받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잘 알다시피 내가 강의료로 충당하거나 책을 쓰고 출판을 하고 있다. 그것이 요즘 잘 팔린다.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현재 여기서 일하는 분들은 대기업에서 오라고 해도 안 가는 사람들이다. 이 일이 좋기 때문에 열정과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신 교수: 베스트셀러 작품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책은 무엇인가

이 박사: 나는 『공부하는 독종』을 꼽고 싶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제 세계 정상에 섰다. 지금까지는 남을 흉내 내면서 따라 했다선진국의 것을 모방하기도 하고, 아이디어를 더 첨가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흉내를 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우리는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했다. 지금부터는 우리 것으로 승부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식산업을 지향해야 하고 무역에 힘써야 한다. 이 좁은 땅에서 우리는 무역이 아니면 먹고 살 길이 없다.
지금 우리 사회와 기업에서는 한결 같이 창조적인 인간을 주장하고 있다. 창조적인 인간의 기본은 공부이다. 그리고 그 공부를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 우리는 학교를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는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공부를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일본이 저렇게 발전하는 것도 끊임없는 공부와 높은 독서율이다. 우리도 이제는 효율적인 공부를 해야 할 때이다.


신 교수: 현재 가장 몰두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 박사: 요즘 무엇이 한국을 세계정상으로 달리게 하는지 연구하고 있다. 가령  한국인의 어떤 기질이 이와 같은 성과를 내게 되었는지 그것을 분석을 하고 있다. 60년대에 세발자전거도 만들 수 없던 나라가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나는 한국인이 어떤 인간이길래 이것이 가능했는지 분석을 해 봤다.
이제는 우리가 세계정상에 섰다는 것을 국민들이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자부심과 자신감이 생긴다. 그렇다면 이제 정상에 선 이상 거기에 맞는 시민으로서의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해서는 안 된다. 유연성과 융통성을 발휘해서 그때그때 문제를 잘 해결해야 실패가 없다.

신 교수: 어떻게 보면 기술적인 부분은 단시간에 구축이 가능하지 않나? 그런데 정신적인 부분은 빠른 스피드로 나가기가 참 힘들 것 같다

이 박사: 그래서 내가 세라토닌 문화운동을 하는 이유가 국민들이 이제는 격정의 시대, 물론 지금도 필요하지만 나라의 품격을 올리고 차분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선진국의 대열에 설 수 있다. 현재 세계 정상에 서있지만, 문화적인 성숙도에서 격차가 많기 때문에 좋은 질의 제품을 만들어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것을 개선해야 우리가 제대로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이는 내가 책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신 교수: 어떻게 보면 CEO의 역할을 하고 있다. 조직의 최고책임자로서 가져야 할 능력이나 중요시 여겨야 할 것들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 박사: 나는 책임자가 아니다(웃음). 대표가 따로 있다. 나는 일체 결제라인이 없다. 시쳇말로 그저 들러리 역할, 그냥 깃발을 든 기수라고 말 할 수 있다. 실제로는 경영하고 살림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나는 그런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경영진과 잔잔한 마찰이 있더라도 내가 유연성이 있어서 모두들 잘 따라주고 있다. 최고 책임 경영자가 있으니 나는 그런 일을 하는 게 아니다.
그 다음에 내 기본적인 생각은 정신적인 리더이다. 리더는 덕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굉장한 힘을 발휘한다. 실제로 국어사전을 찾아보니까 덕이 힘이더라. 사람들을 따르게 하는 힘, 나는 덕이라는 말을 요즘 곰곰이 생각한다. 정말 덕이 있는 사람은 사람들이 믿고 따른다. 만약 내가 덕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리더라면 덕이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신 교수: 그렇다면, 덕을 쌓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 박사: 그것은 바로 인격이다. 인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평소 자기를 관리하고, 자기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멀리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능력과 그 다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창조적인 리더여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것들이 합쳐서 덕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신 교수: 개인적인 질문으로 넘어가 보겠다. 대구 출생으로 알고 있다. 어릴 적 이야기를 듣고 싶다. 본인의 인성형성에 영향을 끼친 개인적인 가족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 박사: 7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우리 집은 그렇게 부자는 아니었지만, 전형적인 시골 사대부로 아버지는 그 당시 양현고의 직책을 맡으셨다. 그때는 과거가 없어지고 고등고시가 생기기 전에 양현고라는 제도가 있었다. 아버지는 그곳을 마치시고, 군청의 향교관리원이 되셨다. 지금으로 말하면 문화재 위원이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학교 교사로 자리를 옮기셨다. 그 후 나는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초등학교를 4번이나 옮겨 다녔다.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 나는 성격이 굉장히 리더적이고 사교성이 좋다. 그런데 내 맏형은 나와는 반대로 성격이 가장 내성적이었다. 할머니는 이런 내 성격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할머니에게는 장남이 최고였으니까. 할머니는 나를 정신이 없다고 묶어두실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눈만 뜨면 할머니한테 잡히기 전에 아침마다 도망 다녔다. 그러면서 동네 아주머니들하고 친하게 되었고, 그때 인간친화력이 절로  생긴 것 같다(웃음).
아무튼 나하고 형은 어렸을 때부터 성격이 달랐다. 형은 긴장이 되어서 운다고 하면 나는 흥분이 되어서 잠을 못 자고 울었다. 이렇듯 낙천적이고 사람 좋아하는 나의 기질은 타고난 것 같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적자 집안이었다. 그래서 대를 이어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사범대를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때가 전쟁 때라 피난을 가느라 바빴다.

당시 내가 의과대학 졸업반일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때 아버지의 유언이 너는 절대로 정치를 하지 마라는 것이었다. 삼촌 두 분이 독립 운동을 하시다가 돌아 가셨다. 아버지는 삼촌들 때문에 너무도 시달렸던 것이다.
아버지는 형은 걱정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나는 너무나 적극적이고 외향적이어서 아버지는 내가 정치쪽으로 나가지 않을까 무척 걱정을 하셨던 것 같다. 학교를 다닐 때 나는 반장 및 학생회장을 하곤 했다. 그래서 나는 정치의 유혹도 받았지만, 절대로 가지 않았다. 친한 친구들이 국회의원이나 당선되면 축하인사를 하는 정도였다.
나는 의사의 길을 들어섰으니 외길을 가겠다고 다짐했고 사회정신 의학에 관심이 많았다. 내가 예일대를 간 것도 사회정신의학이 그때 당시는 그곳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전공을 참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평생을 사회정신과 의사로서 살아왔으니 나는 정말 외길을 걸어왔다(웃음). 

 

신 교수: 이야기를 앞쪽으로 되돌려서 질문을 하고 싶다. 그런 낙천적인 성격영향은 할머니 영향인가. 중간에 할머니 말씀을 참 많이 한 것 같다.

이 박사: 글쎄. 영향을 꼭 받았다면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지금도 나는 선비적인 고고한 자세의 문화가 젖어 있다. 지금의 내가 굉장히 선비적인 기질이 많고 항상 맑고 깨끗하게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도 아버지의 교훈이 가장 무서웠기 때문이다.

신 교수: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을 꼽는다면 누구 있겠는가?

이 박사: 예일대에 폴랙이라는 세계적인 정신 분열병으로 유명하신 주임교수가 있었다. 그분의 영향이 가장 컸다. 실제 나는 덜렁대는 성격으로 신중하지를 못한다. 앉아서 꼼꼼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실행파이다. 그런데 지금과 같이 책을 쓸 수 있고 진지하게 공부할 수 있게 된 것도 그 교수님 때문이다. 깊이 있는 공부를 하게 된 것도 그 교수님 덕분이다. 그 당시 예일대 교수님이 3분이 계셨는데, 3분 중에서 일주일에 한번, 한 학기를 정신치료 지도를 교수님들한테 받아야 하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모든 학생들이 플랙 교수에게 지도를 받고 싶어했다.



신 교수: 플랙 교수가 인기가 많으신 교수님이었나 보다

이 박사: 인기가 많기 보다는 그 분은 참 독한 분이셨다. 다른 학생들은 그 분께 받고 싶어 했지만, 나는 원치 않았다. 그런데 학교의 제의로 어쩔 수 없이 그분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월요일 1부터 치료가 시작된다. 내가 정말 살면서 그때 한번 피를 토해 봤다. 일요일 저녁부터 준비하느라 밤을 샜기 때문에. 한 시간 내내 겨우 세 마디 했다. 그런데 그 말 한마디 한마디를 깊게 생각을 해야 된다. 가령 예를 들면 이렇다. 환자하고 대화한 내용을 녹음해야 하는데 나는 그렇게 철저하게 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 녹음이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 한번에 제대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대충대충 감으로 사는 사람이다. 내가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네가 한 이야기냐? 환자가 한 이야기냐?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안하고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폴랙 교수의 특징이다. 그것이 한 시간 내내 3마디 하는 게 다고, 한마디 툭 던진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는데 내 이야기를 안 듣고 있는 것 같아서, 듣고 있냐고 물으면, 안 듣고 있다고 말씀하시고…. 이야기를 들을 가치도 없다는 뜻인 것이다. 이것이 사람 죽이는 일이다.
당시 내 방이 8층인데 내가 교수의 방을 가는 게 아니라 교수가 내방으로 온다. 정말 그런 전통은 훌륭한 전통이다. 그 폴랙 교수님의 치료를 하고 나오면 지도를 못 받는 우리 선배들은 어떤 질문을 했는지 등에 대해서 질문하고 자기네들끼리 깊이 생각하는 훈련과 토의를 했다. 그때는 스트레스가 심할 정도로 끔찍했다. 하지만 나중에 녹음 테이프를 들어보면, 그만큼 나한테는 엄청난 임펙트였다. 정신분석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내가 폴랙 교수님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굉장히 친절한 교수인 편에 속하지만, 그 당시 폴랙 교수는 절대 그런 게 없었다. 폴랙 교수는 내게 정신과 공부뿐만이 아니라 내 인생에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깊이 있게 생각하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신 교수: 인생의 주요한 전기 점(터닝포인트)이 있다면 언제였고, 무엇 때문이었나요?

이 박사: 내가 미국(예일대)을 가게 된 것이 정말 큰 터닝포인트였다. 그 다음엔 내가 서울에 온 것이다. 만약 내가 대구에 계속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당시 나는 사표를 쓰고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서울에 정신과 의사들이 없었던지 스카우트제의가 들어왔다. 그리고 삼성 고려병원에 들어가게 됐다. 미국 입학시험에 합격한 것도 생각하면 정말 운이 좋았다.
미국에 가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친구들이 미국 의사면허를 따야 한다고 해서 갑자기 시험을 봤다. 연세대에서 오전 180문제, 오후에 180문제를 풀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오전에 20문제를 풀고 도저히 어려워서 포기하고 나와 버렸다. 그래서 점심을 먹고 집에 가려고 나왔는데, 연세대 학생들이 데모를 하고 있어서 정문에서 나가지를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30분이 지나도록 데모는 계속되고, 너무 추워서 밖에서 기다리지 못해서 다시 돌아와서 시험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문제의 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합격했는데, 수석으로 합격을 했다.


신 교수: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

이 박사: 나는 우리 국민들을 정말 병원이 필요 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 병원에 안가도 되는 것을 말한다.

정신건강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병은 피할 수 없나?
나중에 몸이 병들어 죽는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된다. 나는 세라토닌 문화운동을 통해 차분한 대한민국, 창조적인 국민, 행복한 시민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글 신경수 _ 아인스파트너 대표이사/경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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